‘우리는 이제 죄 없는 사람이다. 4·3 역사정의 실현 만세!’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제주4·3 생존수형인 18명이 1월 17일 재심에서 공소기각 판정을 받은 뒤 제주지방법원 입구에 내건 플래카드 내용이다. 이들은 22일 국가를 상대로 53억원 규모의 형사보상을 청구했다.

 무죄(無罪) 확정 피고인에게 지급하는 형사보상금은 구금 종류 및 기간, 구금 기간에 입은 재산상 손실과 정신적 고통·신체 손상 등을 두루 고려해 산정하게 된다. 이번에 생존수형인들이 청구한 금액은 개인에 따라 최대 14억7427만4000원에서 최저 8037만8000원까지다. 이 금액은 공소 기각 판결이 확정된 2019년 1월 기준 최저시급에 하루 8시간을 적용해 각자의 수감 생활을 한 날짜를 곱한 수치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에 따라 형사보상 금액이 상당 부분 줄어들 소지도 있다.

 이와 함께 4·3 생존 수형인들은 형사 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근거 자신의 재판 판결문을 법무부 홈페이지에 3월 4일부터 2020년 3월 3일까지 1년간 게재할 것을 제주지방검찰청에 청구했다. 또 형사보상 소송이 마무리되면 오는 4월 중에 국가배상청구 소송도 진행할 예정이다.

 ‘제주4·3’은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다. 지난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발단으로 이념갈등 및 무력충돌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당시 군인도 아닌 민간인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각종 혐의로 처벌됐다.

 재판은 1948년 12월 구(舊) 형법 제77조(내란죄)를 적용해 12차례 진행됐고, 1949년 6월에는 국방경비대법 제32·33조를 적용해 10차례 열렸다. 이 재판을 통해 사형 384명, 무기 305명, 나머지는 금고형을 포함 징역 1년~20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당시 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한 제주도민은 각종 기록을 조사한 결과 무려 2530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형무소에서 학살되거나 행방불명됐다. 난(亂)과 전쟁이 끝난 후에도 피해자들은 ‘빨갱이’ 등의 사회적 낙인(烙印)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 채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야만 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4·3 생존수형인 18명은 가까스로 구제되어 명예가 회복됐지만 나머지 사람과 그 가족들은 지금도 ‘한(恨)’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특별법 개정’ 등 특단의 조치가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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