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   현   춘   식

농경시대의 마지막이었던 60년대 말까지만해도 지천으로 돌멩이가 구르는 토갱이에, 조.보리 씨 뿌려 먹고 고구마.유채 심어 전도금 쓰며 겨우 겨우 연명하였다.

일년삼백육십오일을 쇠길마처럼 등허리가 휘도록 일만 해도, 제비새끼들처럼 입을 벌리는 올망졸망한 자식들 입에 풀질하기조차 힘겨웠다. 산업화시대인 70년대에 접어 들면서 가난에 찌들었던 살림살이는, 일뤠강아지 눈처럼 베롱하게 뜨기 시작했다.

씨를 뿌려도 쇠터럭처럼 자라지 않던 자갈밭에 심어 놓은 감귤나무에 황금이 주렁주렁 달렸다. 공장지대로, 도시로 돈 벌러 떠난 젊은이들이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코딱지처럼 떼어 낸 돈을 고향집으로 부치면서 먹고 살기가 나아 졌다.

그리고 80년대에 이르러 흥청망청 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IMF라는 청천벼락을 맞아 경제는 빈사상태가 되어 버렸다. 나라에서 중병든 경제에 공적자금을 긴급수혈하고 고단백 영양제를 꽂아 놓는 바람에 겨우 목숨을 건졌으나, 그 후유증은 오늘날까지 실업대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도처에 일자리 없다고 아비규환이다. 신용불량자가 무려 4백만명에 이른다는 우울한 소식이 들려 온다. 신용이 자본인데 어찌살까. 소득이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빈곤 가구가 전 인구의 11.1%이나 된다고 한다. 포도청인 목구멍에 거미줄 칠 일이 난감하기만 하다.

일년 이상 직업이 없는 장기 실직자가 삼십만명이 넘는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할 일이 아닐성 싶다. 장애우들의 취업상황도 별로 나아진게 없단다.

무슨 죄업을 타고 났기에 천형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지. 기업들은 취업문에 단단한 빗장을 걸어 놓았기에 지옥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한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 해서 ‘이태백’이다. 취직을 한다해도 삼십대 후반이 되면 일자리를 내놓아야 할 세대가 된다해서 ‘삼팔선’. 사십오세면 체감정년이어서 ‘사오정’이고, 오십대까지 의자에 앉아 있다면 도둑놈이라고 하여 ‘오육도’란다. 풍자도 이 정도면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아무리 풍진 세상이라지만, 철밥통은 남아 있게 마련이다. 공공의 직장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직장은 빈둥빈둥 게으름을 피워도, 봉급날이 되면 자판기 커피처럼 일정액의 급료가 꼬박꼬박 나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런 직장일수록 위계질서가 강하다. 회전의자에 오를수록 사람이 말하는게 아니라 의자가 말을 한다. 출세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속성이 있다. 세월만 가면 저절로 높은 자리가 굴러 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의 경쟁은 치열하다.

줄서기와 물어 뜯기, 폄하하기와 밀어내기, 굽실거리기가 막후에서 다반사로 일어 난다. 의자가 말하는 사회의 풍속도를 약장수 각설이 타령하듯 풀어내면, 신경성 걸린 출세의 꿈이 현실이 될지. 말하는 의자가 저절로 굴러 올지 모를 일이다.

사람이 말을 하나 의자가 말을 하지
골빈당도 허풍쟁이도 능구렁이도 술주정뱅이도, 똥폼잡고 의자에 앉으면 아는 것보다 유식이 더 철철. 어쩌다 세월 가면 출세 절로 된다고?

소갈머리 다시 날 소린가 자던 돼지도 웃을 잠꼬대. 손바닥 불나게 비벼대기 여우 꼬리 잘 흔들기, 간에 쓸개에 잘 달라 붙기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기, 엄지 앞에선 알랑방구 졸 앞에선 거드름 피우기, 올챙이 적은 잊어버리기 개구리처럼 잘 뛰어 앉기, 사냥개 코로 구린내 잘 맡기 공짜라면 쥐약도 먹기, 궂은 일은 알아서 해 걸려드는 건 송사리 들이지, 이런 걸 잘해야 출세하는 법 말하는 의자 굴러 들어오는 법.
날마다 쓰는 사직서, 신경성 출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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