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관광대학 사회복지과 교수   이   광   래

어느듯 일상이 되어버린 듯, 아침에 눈뜨기가 무서울 정도로 연일 터져나오는 자살사건들.
부모가 자식들을 죽이는 사건은 이제 더 이상 물러설곳이 없는 비정한 현실로 제아무리 무서운 공포영화라 해도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지금 같을까?

절망에 못이겨 벼랑끝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과 그저 간단하게 하루 사건사고로 치부해 버리고 다시 무덤덤하게 돌아가는 세상이 잔인하다 못해 소름이 끼친다.

어쩌면 지금 우리사회 빈곤층의 실상이 그대로 까발려진 예견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이 아이들만 살아 남았을 때, 그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사회보호속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동반죽음이 한편으로는 정당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아이들의 비참한 미래가 너무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동반자살’, ‘일가족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당면한 우리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얼마나 불안하고 사회적 약자들이 얼마나 보호받지 못하는가를 말이다.

이렇듯 최근 들어 ‘자살신드롬’이라는 얼토당토 않는 말까지 만들어진 것을 보면 자살이 분명 우리사회 이상기류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살은 앞으로 희망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현재 우리사회가 그만큼 희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개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회전체 분위기의 문제이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하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자성의 움직임을 가져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이어 발생하는 자살원인의 대부분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막다른 길에 내던져진 경우이다. 더욱 극대화된 빈곤이 자살을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탈빈곤정책현황과 과제’ 라는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0년 기준으로 100가구중 7.1가구가 본인 또는 가족이 일자리를 가진 근로빈곤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6년에는 일자리 있는 근로빈곤층이 100가구당 2.9가구임을 감안할 때, 근로빈곤층 비중이 4년사이 2배이상 늘어난 것이다.

과거엔 일자리만 구하면 그래도 그럭저럭 먹고 살수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일을 해도 급여가 낮고, 고용이 불안정하여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The Working Poor)이 급증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현상이 ‘사회통합’과 ‘빈곤해소’등을 표방하고 등장한 참여정부에서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에 있어 심각한 의문을 제가할 수 있는 부문이기도 하다.

결국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더 나아질 희망이 없다는 좌절감이 빈곤층의 자살을 방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빈곤층 내의 현상이 아니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외환위기이후 더욱 심해지고 중산층 또는 서민층이 급격히 몰락하여 극도의 생활궁핍에 시달리는 계층이라는 점에서 ‘벼랑 끝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자녀동반 자살’로 나타나고 있는 저소득층의 자포자기 현상은 예전과 또다른 양상이다. 우선 잠재적인 ‘동반자살자’ 가 계속 늘어가고 있고, 경기침체와 맞물려 이들이 정상생활로 복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응이 너무 미흡하다는 사실이다.

자살사건은 실업과 비정규직화 등으로 인한 빈곤층 양산과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 발생으로 인한 사회적 타살이며 일을 하면서도 생활고에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에 대한 적절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지 않을 경우 ‘사회적 타살’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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