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동원피해자 유골 74위
지난 2일 선운정사 약사전 안치
일본인 불자 20여 명 참석 ‘눈길’

 

일제강제동원피해자 유골 74위가 일본에서부터 서울 김구기념관을 거쳐 지난 2일 애월읍 소재 선운정사 약사전에 최종 안치됐다. 

제1회 조선인 유골봉환 남북공동사업 ‘긴 아리랑’ 안치식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민족화해협의회,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분향, 불교의식, 사업소개 및 감사패전달, 추모사, 봉송 등의 순서로 2시간 가량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 원희룡 도지사를 비롯해 김태석 도의회의장, 도희범 제주시사장 등이 도내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안치식의 의미를 더했다.

특히, 일본 통국사에서 조선인 유골을 보관했던 최무애 주지스님과 이번 행사를 함께 준비한 일본인 불자 20여명이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장정언 봉안위원회 위원장은 추모사에서 “비록 살아서 오지는 못했지만, 혼이나마 아름답고 인정 많은 세계 평화의 섬 제주로 오게 된 것은 기적같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김홍걸 민족화해협의회 의장은 “희생자분들이 원없이 선운정사의 야경을 볼 수 있게 됐다”며 영현들을 위로했다. 

이어 원지사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많다”면서 “오랜 기다림의 세월을 단축시킬 수 있도록 남은 과제를 이뤄나가는 과정에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한다”고 전했다. 

추모사가 끝나고 유골 74위가 약사전에 안치됨으로써 긴 여정의 끝을 맺었다. 

나라 잃은 설움과 원망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고국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던 이들이 드디어 고국의 땅에서 안식을 취하는 순간이었다. 

유골이 최종 안치되기까지 이들의 여정은 꽤 길었다.  

2010년 정부차원의 봉환사업이 중단된 이래 일부 시민단체가 이어왔고, 지난 7월 남북한이 협력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남북한이 ‘조선의 혼, 아리랑의 귀향’운동을 위한 조선인 유골봉환 공동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8월에는 일본 내 시민단체인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과 협력해 남·북·일 강제징용 유골봉환기구가 출범함으로써 더욱 활발한 교류가 이어졌다.

같은 해 11월에는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위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지속해 왔다. 

이후 지난 2월에 구체적인 봉환 일정이 나왔고, 같은 달 27일 오사카 통국사를 출발한 유골은 28일 인천공항을 거쳐 귀향했다. 

그날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노제를 봉행했고, 지난 1일에는 백범김구 기념관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일제하강제동원희생자남북공동 추모제’가 열렸다. 

이후 제주로 내려와 이날 안치식을 끝내고 완전한 쉼을 얻었다. 

이번 유골 봉환과정에는 일본 통곡사 불자(보살)들의 도움이 컸다. 

일본 통국사에서부터 제례와 이송, 안치식 등 모든 과정에 참여한 이들은 식이 진행되는 동안 감정이 북받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 중 재일교포 3세 야마다 고또미씨는 조부가 제주 출신이라 더욱 감회가 새롭다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오사카에서 준비할 때 보살님들과 주지스님들이 많이 고민하고 고생도 했다. 유골함을 감싸는 보자기에 한반도 그림을 넣는 과정과 제례 준비 등등 세세하게 신경을 썼다. 또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느낀 것이 많다. 전쟁이라고 하면 먼 옛날 일처럼 느껴지는데 유골이 아직 이 땅(일본)에 남아 있는 한 전쟁은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골을 하나씩이라도 고향 땅으로 보내는 게 우리 아이들을 위해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자녀와 조카들도 함께 일본에서부터 왔는데, 이들을 위해서라도 슬픈 역사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10일간의 긴 여정이 힘들지 않았는지 묻자 “일정은 많이 피곤했지만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온 보살님들 모두 기쁜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감회를 밝혔다.

이날 남·북·일 조선인유해봉환추진위원회 일본대표로 참석한 곤노유리 재단법인 21세기 일본위원회 이사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김홍걸 상임이사장과의 인연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 그의 숭고한 뜻을 듣고 응원하고 싶었다”며 앞으로도 응원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제주 역시 4·3이라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고, 오늘날까지 피해자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이에 제주인이라면 일본 땅에 묻힌 희생자들의 한(恨)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는 아직 2만여구 이상의 유골이 도처에 묻혀있다. 그들이 역사속에서 영원한 강제징용자로 남지 안기 위해서 우리 모두 유골봉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타국에서 부르던 통곡의 아리랑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그날 귀향의 아리랑으로 불리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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