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다른 제주살이에 지친 이들
값싼 인건비·비싼 물가에 작별 인사

 

[제주를 떠나는 그들, 육지 이방인]
"제주도에 온 걸 후회합니다. 서울에서 떠나지 못한 것도 후회합니다. 결국엔 후회 속에 살고 있는 내 자신도 ‘후회’ 덩어리입니다. 한양이 싫다고 떠나온 섬을 걸어봅니다. ‘섬’ 제주는 신기루, 라스베가스라 생각합니다. 라스베가스는 사막을 인간의 신기루로 만들었습니다. 제주로 오면 무언가 다를 줄 알았습니다. 제주로 와보니 주변은 육지 곳곳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오라동, 그곳은 공항이 가까이 있습니다. 육지에서 갓온 사람들은 도착하고 제주도를 몰라 터를 잡기도 하고 또 다시 육지로 언제라도 떠날 수 있으니 좋은 동네입니다. 그곳을 찾았습니다. 육지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삶이 제주에선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엔 똑같다고 합니다. 결국 여기가 아닌 어딘가 따윈 없다는 말이 아닐는지요."

“우린 이효리와 루시드폴이 아니었어”
김포에서 제주로는 약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 강남에서 강북까지 지하철 환승과 지옥철로 인해 더 멀 지경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로 떠나왔다. 사실 떠나기 위해 많은 것은 필요치 않았다. 그토록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을 보니 제주로 오는 트렁크가 왜 이리 왜소해보이는건지. 그토록 놓지 못했던 것들 사이로 우린 말한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제주로 왔다고. 

오라동에서 그들을 만났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반나절 만에 김포로 짐을 싸는 이도 봤고 삼일 만에 짐을 싸는 이도 봤다. 김해에서 온 사람은 남편과 싸운 후 가출했다며 이번에 남편의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치겠다며 제주로 왔다. 매일을 술 마시는 20대 여자애도 있었다. 집이 몇몇 가구를 빼고는 전부 육지인이었다. 서로 ‘육지것’이라 불리는 단어의 생소함에 웃어대면서도 마지막엔 이 말을 했다. ‘우린 이효리가 아니었고 루시드폴이 아니었다고’, 며칠 전 아는 드라마 작가 선생님과 이 얘길 했더니 “주제를 모르고 효리 흉내를... 효리가 아니었어 루시드폴이 아니었어 무척 저능아적인 대사네ㅋ”이라고 답변이 왔다.

“육지, 그리고 이방인”
제주도민 친구가 말했다. “제주도에서 대학 졸업하고 가까스로 서울로 도망쳐서 서울 남자랑 결혼했건만 당신은 굳이 왜?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던 곳을 육지것들이 가는 꼴을 보니 어디 한 번 가봐라”란 생각이 든다고.

육지 사람에게 ‘육지’라는 단어처럼 생소한 단어는 없다. 육지에서 왔냐는 말에 어느덧 육지것들은 이방인으로 분류되는 기분이 든다며 “섬사람들이 보수적이고 폐쇄적이야”라는 말들이 나왔다.

“육지에서 제주로 왔지만 다시 육지로”
제주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육지 것들을 수없이 봤다. 제주로 올 때는 평생 안착할 것 마냥 모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차까지 끌고 온 사람을 봤다. 그 사람은 제주는 인건비는 싼데 물건 값이 너무 비싸다며 갑질을 당한 회사에 찾아가 온갖 욕을 퍼붓고는 김포로 떠났다. 어느 날은 김해에서 온 사람은 남편이 사과할 때까지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하더니 일 하는 곳에서 3일 만에 일하는 방식이 우리와 맞지 않는다고 짤렸다고 돌아갔다. 어떤 사람은 육지에서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했는데 제주에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아 떠난다고 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재무분야에서 일한 경제맨이었는데 제주에 와서 온갖 갑질을 참으며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제주에서 내려온 육지것, 이방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과거와 동떨어진 일들을 하고 있었다.

“제주를 떠나는 그들 육지 이방인”
자신의 분야와는 동떨어진 일을 하는 괴리감, 싼 인건비 대비 비싼 방세와 물건값, 힐링을 하러 찾아왔지만 오히려 아는 사람 단 한명 없어서 갑질을 당해도 꾹꾹 참는다는 이야기. 어느 사람은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매장 관리자가 문제점을 찾는다고 화장실 청소하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며 자신이 수치스럽고 모욕스럽다고 했다. 다들 분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참았냐는 말에 이대로 육지 가기 싫었다고 했다. 어느 사람은 육지에서 평생 병원 일만 했는데 내려와서 하는 일이 매일 식당 화장실 청소뿐이라 ‘내가 육지사람이라 나만 시키나?’ 열 받는다고 했다. 

“라스베가스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박하사탕의 설경구가 말했다. “나 돌아갈래”
누군가는 돌아갔고 누군가는 남아있다. 그런데 더 이상 남아있는 곳은 처음의 오라동이 아니다. 떠난 이들 뒤로 아직도 고민하며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은 노형동, 삼화지구. 탑동. 일도이동 등에 흩어져서 살고 있다. 힐링을 찾아왔다 하지만 제주도는 도망친 곳이었고 회피한 곳이었다. 결국 라스베가스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제주도의 바닷바람은 육지것들에게 아직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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