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C~기원후 3C 원삼국시대 '대규모 주거지'
청동기후기~철기 초기 밝히는 단서
유적·유물 스토리텔링 중요성 강조
과거~현재~미래 연결할 중요 자산

제주에는 제주의 최초(最初) 최고(最古) 최고(最高) 부분이 산재해 있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는 고고학적 최초의 인류 유적과 역사학적,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처음의 것과 가장 오래된 것, 가장 높은 것 등 많은 부분들이 있다.

제주매일은 기록학적 측면에서 이를 도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아래 제주의 전 분야에서 이를 찾고 보도한다. [편집자주]

삼양동 유적지에 위치한 부족장움집으로 중요 위세품이 출토됐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부족장움집으로 추정된다.
삼양동 유적지에 위치한 부족장움집으로 중요 위세품이 출토됐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부족장움집으로 추정된다.

제주 삼양동 유적(濟州 三陽洞 遺蹟)은 제주 최초의 대규모 마을 유적이다. 탐라국 형성기 사회상을 보여주는 마을 유적이다. 

삼양동 유적은 한반도 원삼국시대를 의미한다. 한반도는 당시 기원전 1세기(초기 철기시대) 부여, 고구려, 백제, 삼한, 신라, 가야 등 고대국가로 발전하려는 다툼이 일었다. 이 다툼 후, 기원후 3세기 삼국의 정립과 고대국가가 탄생된다. 원삼국시대는 앞서 설명한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를 고고학에서는 원삼국시대라고 일컫는다. 원삼국시대 대규모 주거지가 바로 제주 삼양동 유적지다.

강명숙 삼양동 유적지 문화관광해설사는 “삼양동 유적지는 청동기 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 외 신석기 시대 유물들도 발견됐다. 전체적인 마을 규모로 봤을 때 우리나라 최대 규모이다. 어릴 때부터 제주도민으로서 탐라국의 실체가 확인된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 발견됐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삼양동 유적지는 고대 사람들의 마을 유적이다. 1999년 제주 삼양동 선사유적에서 2011년 7월 28일 제주 삼양동 유적으로 이름이 바꿔졌다.

‘선사유적’보다 마을 유적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삼양동 유적지는 1997년 삼양동 일대 아파트 부지를 위한 토지구획정리사업  당시 선사시대 유물이 발견되자 제주대학교박물관이 발굴에 착수했다. 당시 제주시가 아파트를 포기하고 선사유적기념관을 건립했다. 

도련동에 위치해 있었으나 2005년 5월 삼양동 유적지로 옮겼다. 삼양동, 도련동 일대 고인돌은 모두 *남방식지석묘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남방지석묘란 무덤방을 지하에 만들고 그 주위에 4~8개의 받침돌을 놓은 뒤 뚜껑돌을 덮는 것으로, 바둑판 모양)
삼양동, 도련동 일대 고인돌은 모두 남방식 지석묘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삼양동 유적지는 1997년 4월부터 1999년 7월까지 제주대학교 박물관의 조사 결과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전후시기 집터 236곳이 확인됐다. 또 돌담장, 쓰레기 폐기장, 마을의 외곽을 두르고 있던 도랑 유구 등이 있는 큰 규모의 마을 유적으로 확인됐다. 

집터 내부는 600여점의 토기류(구멍띠토기, 덧띠무늬토기, 적갈색항아리 등), 150점의 석기류(돌도끼, 대패, 갈돌, 숯돌 등), 철기류(철제도끼, 손칼), 청동기류(동검, 칼자루끝장식 등), 불에 탄 곡식류(콩, 보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제주도 청동기시대 후기 및 초기 철기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주편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에 따르면 “제주 삼양 유적지는 우리 학생들이 전시관의 깨진 질그릇이나 야외의 초가집을 보면서 어떤 감동을 받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감동을 줄 명작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유물들은 어떤 역사성이 있고 어떤 전설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 때 의미가 있고 가슴에 새겨볼 그 무엇이 있는 것”이라고 기술했다.

삼양동 외부전시관 부지 발굴조사에서 주거지는 직경 4m 내외로 주거지의 중앙에 타원형 수혈이 자리하고 있고, 바닥은 중앙부의 수혈을 중심으로 약간의 경사를 보이고 있으나 대체로 평평하게 처리되어 있다.
삼양동 외부전시관 부지 발굴조사에서 주거지는 직경 4m 내외로 주거지의 중앙에 타원형 수혈이 자리하고 있고, 바닥은 중앙부의 수혈을 중심으로 약간의 경사를 보이고 있으나 대체로 평평하게 처리되어 있다.

지금 이 유적을 보는 지식층은 유적과 유물의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지금 사회에선 유적과 유물의 의미보다 Why(왜)와 How(어떻게)라는 질문에 초점이 맞춰져 그 유물이 왜 생겼고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원전 1세기 초기철기시대 토제인 삼양동식 항아리형 토기
​​기원전 1세기 초기철기시대 토제인 삼양동식 항아리형 토기

삼양동 사람들의 사회상을 볼 수 있는 옥환, 요령식동검편, 유리옥과 철기류는 제주도에서 생산되지 않았던 중국계 유물이다. 삼양동 사람들이 한반도를 비롯한 외부지역과도 활발히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강명숙 삼양동 유적지 문화관광해설사는 “원삼국시대 탐라국이 포함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사국시대, 오국시대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나 라고 할 정도로 탐라국이 생각보다도 큰 규모의 부족국가로 있었다고 생각된다”고 이야기했다.

제주 최초 마을문화유적지, 제주 초기 철기시대의 사회상을 알 수 있는 대규모 삼양 마을 유적지. 이곳은 제주 마을의 유적이 삼양동 검은 모래 해변과 아파트로 정리된 삼화지구와 함께 존재한다. 과거와 오늘, 미래를 연결해 줄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라는 생각이다. 

삼양동 유적지는 지금까지 조사된 한반도 최대 마을 유적지로 1999년 사적 제416로 지정됐다. 유적지는 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6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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