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준언론인· 전 제주도기자협회장
임창준언론인· 전 제주도기자협회장

 필자가 초.중학생 시절인 1950-60년대, 제주시내 거리에는 거지가 많았다. 웬만큼 산다는 집엔 깡통을 든 구걸자들의 발길이 빈번했다. 대부분 초가집인데 반해 우리 집은 기와집이라선지 남보다 잘 사는 줄 알고 구걸 방문객들이 더 많았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께서는 밥과 반찬을 내줬다. 음식을 깡통에 받아든 구걸자들은 연신 고맙다고 굽실거리며 대문을 나섰다. 밥이 떨어졌을 경우 어머니는 사정을 말하며 다음에 오라고 했다. 피치 못할 경우엔 조그만 현금을 대신 내주기도 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구걸자들은 사라져갔다. 국민소득이 늘면서 나라 형편도 좋아지면서 이전보다 잘 살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사상 처음으로 3만 달러 고지를 넘어 3만1349달러(원화기준 3449.4만원)를 기록했다고 이 달들어 공식 발표했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접어든지 12년 만의 일이다. 과거 국민소득 500달러 안팎으로 세계에서 가장 못살던 나라가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이는 인구가 5000만명 이상이면서 동시에 소득이 3만 달러를 이뤄야 가입할 수 있는 ‘30-50’ 클럽‘ 나라로선 세계 7번째로 진입한 것이디. 현재 ‘30-50클럽’ 국가는 6개국(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에 불과하다. 세계 최빈국(最貧國)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의 소득 3만달러 진입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인증 마크’란 점에서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소득 3만달러 시대를 맞는 전체적인 국민들의 만족도나, 성취감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이 뉴스를 접했을 때 일반 시민들의 감정을 어땠을까? 연합뉴스에 의하면, 우리나라가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달성했다는 기사에 되레 “화가 난다”는 표시를 한 사람이 무려 87%를 차지했다고 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소득의 온기(溫氣)가 소수의 상위층에만 퍼져있고 하위층에는 온기가 체감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실례로 가계(家計) 사이에서도 소득 양극화가 뚜렷하다. 지난해 상반기 소득 10분위별 가구소득 증가율(전년동기 대비)을 보면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포괄하는 1~5분위 소득은 일제히 감소하고 이보다 소득이 높은 6~10분위 소득은 모두 상승했다. 성장의 열매가 소수의 고소득층에 집중돼 있음을 말해준다.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졌다(貧益貧, 貧益貧)는 얘기다. 여기에 더해 날로 커지는 소득불평등, 늙어가는 산업구조, 저출산ㆍ고령화 부담 등은 우리 경제의 추가 도약을 단단히 발목잡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행복이나 ‘삶의 질’ 수준은 경제력에 비해 훨씬 낮다. 2017년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국가 중에서 한국의 경제력은 11위, 행복순위는 29위로 나타났으며, 청년 행복순위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경제력과 행복감 간 불일치’의 이면을 찾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인들은 좀처럼 타인이나 사회를 믿지 못한다고 한다. OECD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사회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26%만이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75%의 국민이 긍정적인 답변을 해 OECD 35개 회원 국가들 중 사회신뢰도 1위를 한 덴마크에 비하면 우리의 신뢰도 성적은 형편없다.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 시대인 1970-80년 대에 오히려 살기 좋았다고 말하는 부류들도 많다. 당시엔 요즘처럼 사회적 갈등이나 상대적 박탈감, 불목· 대립· 분쟁 등이 덜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3만달러 시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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