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랑국과 혼인동맹관계 성립
탐라사회 체질개선 중요 역할
원거리 교역·외부정세 신속 대응

 제주 최초의 국가는 ‘탐라’로 알려져 있으며 탐라의 건국신화로는 ‘삼을나 신화’가 있다. 고을나가 건국했다고 전해지는 탐라국은 독립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하며 무역국가로 번성을 누렸다.

▲제주의 시작, 탐라의 시작 ‘삼을나 신화’

 탐라국의 건국 신화로 ‘삼을나’가 유명하다. 타 지역과 다른 삼성(三姓)신화의 형태로도 주목받는다. 신화에 따르면 한라산 북쪽 모흥혈(오늘날의 삼성혈)이라는 땅에서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라는 세 신이 솟아 나와 살았다고 한다. 이들은 벽랑국에서 들어온 세 공주를 아내로 맞아 살게 되면서 제주도의 건국자가 됐다고 전한다.

 탐라부족이 벽랑부족과 혼인에 의한 결연관계를 맺는 상황의 전개가 신화의 주요 내용이다. 결연관계는 이 신화가 갖는 사회구조적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곧 삼신인 집단인 탐라부족은 외혼제의 원칙에 의해 서로 동서 관계를 맺었다. 벽랑국왕의 입장에서 보면 탐라부족의 유력 인사들을 사위로 맞음으로써 탐라국과 벽랑국 사이에는 일종의 혼인동맹관계가 성립됐다. 결국 탐라부족사회는 외부와의 혼인 동맹을 근거로 하는 결속 관게를 기제로 해 자체 내에서 형성됐던 부족공동체보다는 상위의 복잡한 정치집단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곧 탐라사회의 외부로부터 혼입해 오는 우위세력이 탐라사회와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탐라사회의 일부를 구성해 기존 탐라사회의 체질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할 수 있다.

▲ 탐라국의 등장은?

 ‘탐라’라는 이름은 삼국사기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476년(백제 문주왕 2) 탐라에서 백제에 조공을 하였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삼국지 위지동이전 마한조’에서 보이는 ‘주호’에 관한 기록을 탐라에 대한 첫 기록으로 보는 설이 우세하다. “또 마한의 서쪽 바다 가운데 큰 섬에 주호(州胡)가 있는데, 그 사람들은 다소 몸집이 작고 언어가 한(韓)과 다르다. 모두 선비족처럼 머리를 깎고 가죽 옷을 입는데 소와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 그 옷은 윗도리는 있으나 아랫도리가 없으니 대략 알몸과 같다. 배를 타고 왕래하며 한(韓)과 교역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는 그 당시 탐라가 주변국에서 인식할 만한 독자세력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탐라국의 형성은 지배자가 출현하고 제주 전역에 동일한 문화권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주 용담동 무덤 유적에서 나온 철제무기와 구슬 유물들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자주국가로써의 탐라

 탐라가 원거리 교역을 수행했음은 분명하며 이를 주도하던 주체-지배세력이 존재했다. 하지만 탐라는 국제적으로는 주변적이고 부수적인 위상에 그쳤다. 자주국가로서의 면모는 여실히 보여주는데 한반도를 비롯한 외부정세에 신속히 대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탐라국의 대외교섭에 관련된 기록은 앞에서 말한 ‘삼국지’의 ‘주호’를 들 수 있다. 산지항 출토 신대의 유물은 기원후 1세기 경 제주도의 세력이 대외교역에 참가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다. 다만 중심 해로에서 제주가 비껴나 있다는 지리적 여건과 산출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주호가 주요 교역대상국으로 올라서지는 못했다. 또한 이상의 두 가지 이유는 탐라사회의 발전이 주변지역에 비해 정체되는 원인이었다.

 하지만 국제정세에 대한 탐라국의 반응은 신속했다. 476년 백제와의 교섭은 백제의 한성함락과 웅진천도라는 사건을 인지하고 이루어졌다. 661년 당과 왜에 동시에 사신을 파견한 것이나 662년 신라와 교섭한 것 역시 백제멸망이라는 중대사건에 발빠르게 대응한 것이었다. 백제 멸망 이후 탐라가 취한 신속한 외교행위의 목적은 백제부흥운동의 원조, 신라의 침략에 대한 방어, 종주국의 멸망을 기회로 독자세력화 모색 등을 싱정할 수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탐라국이 독자적인 외교행보를 보였다는 점에서 국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탐라가 한반도에 동화된 시점은 명확하지 않으나 중앙 집권 통치가 굳건해진 조선 왕조가 육지와 같은 목, 군, 현 단위 행정구역을 설치하면서 본격적인 관리를 받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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