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 인터뷰]
“군인들 어머니 배 위에
널빤지 갈고 시소타는 등 잔혹”

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
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

“겨우 18살 나이였습니다. 지금 같으면 시청 대학로에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면서 한참 웃을 그 나이, 저희 어머님은 주정공장 수용소에서 모진 고문 끝에 저를 낳았습니다”

제주 4.3 71주년 추념식 전야제가 열린 2일 시청 앞 광장, 송승문(70) 4.3희생자유족회장의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잃어버린 18살’이었다. 

백발의 18살 청년 송승문 회장은 사진부탁에 장난기 어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다.

송회장의 일생은 ‘살아남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송회장은 4.3 당시 제주공항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집단학살을 당했다. 어머니는 주정공장 수용소에서 임신상태였는데 그 당시 군인들이 뱃속 송회장을 지우려 어머니 배 위에 널빤지를 놓고 군인들이 시소를 탔다고 한다.  

송회장은 “저를 유산시키려고 하는 광경을 봤던 우리 할머님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어머니와 할머니 두 분이 핏덩이를 안고 저를 키우며 살아온 생활이 70년이다. 주정공장터에서 태어난 제가 이제는 70이 넘었다”며 할머니와 어머님에 대한 마음을 먼저 내비쳤다.

송회장은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한 한이 있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언젠가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는 날이 오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런데 결국 살다보니 제주 4.3 역사적 진실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역사가 되었다”고 인생을 회고했다.

그는 “아무리 얘기해도 아직 젊은 학생은 4.3에 크게 관심이 없다. 아이들에게 4·3을 주입식교육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며 “4.3이 아프다는 것을 안것만으로 시작“이라고 이야기했다. 

국회에 계류중인 4.3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송회장은 “4.3의 전국화를 위해 작년에 동백 뱃지를 4만개 제작했는데 부족했다. 70만개를 보급하면서 이제는 전국화가 됐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송회장은 “첫째, 4.3 시신화장 후 희생자로 결정됐으면 국고지원을 받아 화장해서 모시는 일, 두 번째, 위령탑에 썩은 물이 고인다. 돌문화공원, 난징, 오키나와처럼 개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금년에 하기로 약속을 했다”고 바람사항을 전했다. 

송회장은 “주정공장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태어난 제가 이제는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고 이렇게 살아왔다.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기를 희망하며 우리 역사는 우리 기억”이라고 마지막으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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