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배경이나 빽이 없고 잘난 부모를 만나지 못한 게 죄입니다. 왜 내 부모는 권력이나 돈이 없는지 세상이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얼마전 김성태 국회의원(전 한국당 원내대표)의 딸이 KT에 부정으로 합격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는 내뱉는 박모씨(32)의 하소연이다.

공기업인 KT2012년 신입사원 공개채용에서 유력 인사의 채용 청탁을 받은 지원자를 관심 지원자로 분류해 전형마다 특혜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각 전형 단계에서 탈락할 때마다 번번이 점수가 조작돼 합격한 지원자도, 입사 지원서도 내지 않았는데 전형 도중에 서류 합격자로 둔갑해 최종 합격한 사례도 나왔다.

이런 사실은 검찰 수사 결과 KT의 부정 채용에 관여해 기소된 이 회사 전 인재경영실장 김상효 씨(63)의 재판에 넘겨진 공소장 죄목에 담겼다. 김성태 의원의 딸 A(33)2012년 신입사원 공개채용 서류 접수 기간에 입사 지원서를 내지 않았지만 전형 도중 서류 합격자로 둔갑했다. 서유열 전 KT 홈고객부문 사장이 201210월 김씨에게 김 의원 딸을 공채에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면서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다른 지원자들이 인·적성 검사 시험까지 마친 시점이었다.

김씨는 이후에도 A씨 전형 결과를 챙겼다. 다른 지원자와 달리 적성검사를 면제받은 A씨가 온라인 인성검사 결과 불합격권인 D등급을 받자, 김씨는 이 점수를 합격권으로 조정했다. 결국 김의원의 딸 부정채용 의혹으로 불거진 ‘KT 채용비리 사건에선 성적 조작’ ‘전형 건너뛰기’ ‘원서 끼워넣기등 편법과 특혜가 동원된 셈이다.

김의원은 KT 계열사 노조위원장 출신의 3선 의원이다. 김의원은 2010~2012년엔 KT의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이었다. KT는 국회 상임위원회의 이요, ()이다. 이 상임위 소속 의원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김의원은 지난해 말 딸의 부정채용 문제가 불거지자 나와 상관없는 새빨간 거짓말이라 했고, 4월들어 어느 정도 사실이 밝혀지자 집권당과 언론이 야합한 공작이라고 역공했다.

정영태 동반성장위원회 전 사무총장의 딸과 성시철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 친척의 딸은 면접 단계에서 특혜를 받았다. 정씨 딸은 1차 실무면접에서 3명의 심사위원들로부터 ‘D, D, D’ 등급을 받았다. 1차 면접에서 2명 이상으로부터 D등급을 받으면 우선 제외되기 때문에 정씨는 불합격권이었다. 하지만 간부가 인사 담당자에게 정씨 점수를 조작하도록 시켰고, 정씨는 2차 임원면접을 볼 기회를 얻어 최종 합격했다.

서류전형부터 인·적성검사, 면접까지 모든 전형 단계에서 통째로 조작된 경우도 있었다. 채용비리 의혹에 연루된 몇사람은 같은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했다. 그야 말로 비리가 판치는 요지경 인사다. 유능한 응시자들은, 빽으로 밀어넣어 합격된 귀한 자제의 등살에 떠밀려 시험에 또 고배를 마셨다.

요즈음 이 땅의 젊은이들은 극심한 취업난 속에 취업을 위해 별별 노력을 다하고있다. 그렇잖아도 공공 기업체 같은 곳엔 빽이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다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하다. 그래서 비교적 부정 인사(채용)가 없는 공무원 시험에 바짝 매달리는 것이다. 공무원 시험이 수십 대 1의 바늘구멍이어서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 한창 누려야 할 청춘의 낭만과 열정은 접어둔지 오래다. 평균 경쟁률이 501 이상을 훨씬 높다보니 4-5년 경력 공시족도 수두룩하다. 그나마 합격하면 다행이지만... 서울 노량진 고시촌엔 누우면 겨우 벽에 발을 뻗힐 수 있는 6-8평 정도의 방에서 숙식하고, 책 씨름 하고, 학원에 다니는 공시족이 숱하다. 권력자의 빽으로 그의 자녀를 공기업 시험에 밀어넣는 것은 기회균등주의를 기치로 하는 대한민국에선 큰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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