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태풍 미탁 내습 당시 물에 잠긴 구좌읍 세화리 감자밭

제18호 태풍 미탁이 지나간 뒤 농민들을 찾아 피해상황을 직접 듣기 위해 구좌읍 농가를 찾았다. 가을장마를 시작으로 수차례 태풍이 휩쓸고 간 동부지역 농경지는 한마디로 쑥대밭이었다. 열매가 다 영글어 수확을 앞둔 콩밭은 마치 멧돼지가 헤집어 놓은 듯 엉망이 돼 있었고 어린 새싹들이 뿌리째 뽑혀 나뒹구는 당근밭과 뻘밭이 된 감자밭 등 피해를 입은 농경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늘을 원망하던 농민들은 그나마 남아있는 농작물이라도 건지기 위해 날이 밝자마자 들판으로 나가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한동리 당근밭에서 만난 다섯 명의 삼춘들은 종달리에서부터 품앗이를 나왔다며 “우리 종달리는 검질맬 것도 없어. 다 쓸어 갔어. 구좌읍에서도 제일 (피해가)심해. 다 갈아엎어야지 별수 있나. 그래서 우리 마을에서는 할 일이 없응께 여까지 알바 나왔지”라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오모씨(82)는 “내 평생 이런 적은 처음이야. 파종을 3번까지 했어. 비 많이 와서 (파종)하고 태풍 지나가면 또 하고 또 했는데 결국 남는 게 없어. 태풍이 또 온다지?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며 혀를 내둘렀다. 

제18호 태풍 미탁이 지나간 뒤 뻘밭으로 변해버린 구좌읍 한동리 감자밭

올해 1만7000평에 달하는 농지에 당근과 감자를 심었다는 고모씨(65)는 올해 수확할 작물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고씨는 “속상한 건 이루 말할 수가 없지. 올해 농사는 포기하고 내년 7월까지 기다려야지. 이제 심을 수 있는 건 맥주보리밖에 없는데 요새 누가 보리농사를 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수시로 전화를 걸며 언제 밭을 새로 정비할 것인지 일정을 조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농민들은 흉작에 대비해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했지만 보상금을 받더라도 다음 농사를 위한 종자 값을 충당해야 하고 그나마 본인 소유의 토지가 아닌 임대 해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전한다. 휴경보상금을 지원한다는 제주특별자치도의 공식 발표가 있었으나, 파종시기를 놓쳐 내년 여름까지 땅을 놀려야 하는 농민들의 허탈한 마음을 얼마나 달랠 수 있을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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