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뱃지 떼라!” “열 받아서 세금 못내겠다!” “이러라고 국회의원 뽑아준 줄 아느냐!”

우리 국민들이 국회에 실망한 지는 이미 오래다. 사실상 개점휴업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기껏 열린 국감장마저 난장으로 만드는 여.의원님들을 보면서 내뱄는 민초들의 울분이다. 결국 양심 있는 한 의원이 부끄러운 직함을 더 이상 갖고 싶지 않다면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창피해서 더 이상 국회의원 못하겠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다. 이 의원은 국회의원으로 지내면서 어느새 무기력에 길들여지고 절망에 익숙해졌다면서 우리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기조차 버겁다고 토로했다.

초선으로 한참 의욕을 가져야 할 그가 왜 이처럼 좌절하고 절망했을까. 우리는 양식 있는 한 젊은 의원의 자괴감이 바로 우리 국회의 민낯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일일이 열거하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다.

전문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하의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외쳐대는가 하면 무슨 대단한 벼슬자리의 어르신인양 호통과 고함을 일상으로 내뱄고 있다. 차마 해서는 안 될 장애인 비하 발언이 난무하고 삿대질에 몸싸움이 예삿일로 펼쳐지고 있다. 정치 후진국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의원들이 이런 모습이겠는가. 반대를 위한 반대와 대안 없는 투쟁, 안하무인의 일방통행이 국회의 모습을 정말 창피스럽게 만들고 있다.

정치가 공동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악이 되고 있다는 이 의원의 지적에 공감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의 말대로 상대에 대한 막말과 선동만 있고 숙의와 타협이 사라진 우리 정치의 황폐함은 정치권 전체의 책임이다.

임기 내내 싸움질만 하는 국회에 신물이 나지 않을 국민은 없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내년 총선을 위한 전략이라면 오판을 해도 한참 오버한 것이다. 표를 가진 유권자들이 그렇게 어리석게 보이는가. 제발 정치권이 정신차릴 것을 당부한다. ‘촛불의 주무대가 여의도가 되지 말란 법도 없으려니와, 그렇게 되면 우리는 여.야가 아닌 모두가 참담한 후진의 늪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어떻게 이룩한 민주주의 인가.

우리 정치판이 이렇게 엉망이 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대우가 너무 좋다는 점이다. ‘마진이 크다 보니 너도나도 기업형내지는 평생직업형으로 의원이 되려하고 뱃지를 달기 위한 싸움 또한 죽기 아니면 살기가 되고 있다. 애국심이니 봉사정신이니 무슨 사명감 같은 걸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런 정의롭지 못한 아전인수의 싸움을 계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 오를 데 없는 고위직을 지낸 사람도 그렇고 판사나 검사, 변호사들, 벌만큼 번 사업가들 뭘 더 탐하겠다고 여의도에 몰려들어 추태들을 연출하고 있는가. 우리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사람은 많다. 훌륭한 시대정신과 양식, 선명한 이성을 갖춘 사람들 말이다. 공의를 외면한 채 소리를 좇는 추태를 보이고 있는 진상들은 자기 영역으로 돌아갈 일이다.

막장정치를 부채질하는 종편 채널의 시사 프로그램도 문제다. 이러저러한 인사들이 전문가 또는 평론가는 이름을 달고 출연해 아무렇지도 않게 불의를 옹호하고 비상식과 당리당략을 응원하면서 정파싸움에 앞장서고 있다. 마땅히 비판해야 할 일인데도 억지 논리를 동원해 그들의 변호인이 되고 옹호자가 돼 이전투구의 싸움판을 키우고 있다. 양식 있는 비판이나 정제된 평론이 수치심에서 해방된 낯 뜨거운 전문가들의 궤변에 봉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들 채널은 이른바 기계적 중립이란 미명아래 진영싸움을 시키면서 건전한 국민들의 사고를 오염시키는 한편, 정치인들의 만용을 부추기고 있다. 언론의 덕목이라는 파사현정이나 정론직필이란 말들이 무색해진지 오래다.

우리 국회와 국회의원들, 정치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창피해서 들어가기 싫다는 국회를 정상화시킬 해법은 없는 것일까. 실은 간단한 방법이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원칙으로 돌아가면 된다. 바로 다수결의 원칙이다. 민의를 대변한다는 의정현장에서 국민의 뜻을 담아 낼 수 있는 방법으로 이보다 나은 게 뭐가 있겠는가. 막말도, 삿대질도 몸싸움이나 데모도 다 불필요하다. 각자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의원들의 투표도 당론이 아닌 개인의 소신과 철학, 책임 하에 이루어지도록 하면 된다. 다른 국정철학을 가져 억울하고 분한 측은, 그것이 국민의 뜻이라면, 다음 선거에서 이기면 된다. 달리 무슨 할 말이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이 의원의 창피에 한 번 더 주목해 보고자 한다.

정치가 해답’(solution)을 주기는커녕 문제’(problem)가 돼버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후 4류가 돼버린 우리 정치권, 여도 야도 위기의식을 갖고 이 말의 의미를 새겨봐야 할 것이다. 표가 아니라 횃불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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