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동개혁의 과제로 제시한 직무급제를 확대해 나가기 위한 지원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직무와 능력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할 수 있도록 민간 기업에 컨설팅을 해주고 직무평가 도구 같은 인프라의 개발에도 적극 나서기로 한 것이다. 호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민간 기업에서 직무중심의 임금체계를 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간다는 게 목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라는 매뉴얼을 제작해 배포했다. 직무급을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의 변화 필요성과 절차, 방식, 고려사항 등에 관해 현장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한 안내서다. 매뉴얼은 임금구성을 단순화하거나 직무가치에 기반한 인사관리 체계를 도입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실무자들이 쉽게 원용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익숙한 대로 우리나라 사업체들의 일반적인 임금체계는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연공서열적 급여성격의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호봉제는 그 자체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직무의 내용과 능력보다는 근속기간 같은 인적 요소가 중시돼 노동의 생산성 혹은 경쟁력과는 무관하게 급여가 결정된다. 근로자들이 무사안일에 빠지는 원인이 되는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확대시킨다는 점도 문제다. 또 동일노동 동일임금 취지에 반하거나 임금의 공정성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호봉제’는 또 지금의 저성장 고령화 사회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자의 고령화가 인건비 부담으로 이어지고, 이런 부담이 종국엔 청년 일자리 부족을 가져오는 악순환을 부른다는 것이다.

 “젊어서 적게 받고 늙어서 좀 더 받는 게 뭐가 문제냐?”, “임금의 점증은 근로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저축해 놓은 걸 보상받는 것이다.” 호봉제에 대한 옹호다. 그러나 이 논리는 임금피크제나 노동의 유연성 문제, 즉 해고나 채용 관련 새 트렌드와 갈등관계에 놓이게 된다.

 현대 산업사회의 일자리 패턴은 평생고용제가 점차 폐지돼 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일본이 좋은 예다. 근로에 따른 보수도 연봉 혹은 월봉, 인센티브제 등 노사간 1:1계약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직원들을 사실상 ‘임시직’화 하면서 노동의 생산성이나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금의 과도한 연공성을 줄이고 직무와 능력 중심의 공정한 임금체계로 개편하도록 유도하려는 정부의 방향은 옳다. 직무급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미국 같은 경제 선진국에서 주로 시행하고 있다. 근로자의 근속기간과 관계없이 직무의 난이도나 업무의 강도 등에 따라 급여를 결정한다. 나눠먹기식 온정주의가 아니라 철저한 능력주의가 기본이 되는 급여체제라고 할 수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합리적인 ‘기브 앤 테이크’다.

 글로벌 시대를 맞아 우리사회의 경영환경과 노동환경도 나날이 바뀌어 가고 있다. 제도개혁이라는 것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을 위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기업 또는 국가경제를 보다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체질과 경쟁력을 강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호봉제든 직무급제든 근본적으로는 고용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급여 시스템의 변화가 일자리를 없애는 것도 아니다. 노동계도 직무급제 확대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반대만 할 일이 아니다. 익숙해지면 노사가 피차 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어느 나라가 국민들 나쁘라고, 근로자들 망하라고 새로운 정책을 내놓겠는가. 호봉제에서 직무급제로의 변경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노동개혁의 기본 인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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