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희 서귀포시 성산읍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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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시절 어느 제삿날이었던 것 같다.
‘4.3때 총 맞앙 죽언’ ‘집들이 다 불에 타고‘ ’연좌제로 육군사관학교에 못간‘ 친척들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어린 나는 4.3이 뭔지 무척 궁금해 했었지만 아무도 말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어느 날은 할머니에게 “할머니! 사삼이 뭐 마씀?” 하고 여쭤 봤다. 할머니는 화들짝 놀라며 ‘두린 아이는 몰라도 된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라’ 하고 나를 단속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가 4.3으로 인해 돌아가셨다. 지금 살아 계신 작은 할아버지는 팔에 총을 맞고 죽은 척 한 후에 가까스로 살아나셨다고 한다. 4.3사건을 겪은 할머니는 마음 놓고 얘기도 못했을 뿐 더러 어린 손녀가 알면 큰일 날 것처럼 내 입을 막았던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의 침묵은 어린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4.3은 내 기억 속 저편에서 봉인된 채 어느 덧 성인이 되었다.   
민주화 흐름속에서 4.3 특별법 제정, 정부차원의 진상보고서, 대통령의 공식사과 등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생존자와 유족들은 본인이 피해자라는 것을 말 할 수 있게 되었고 4.3 희생자 추념일은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이런 일련의 과정은 보시지 못하고 50년의 침묵 속에서 돌아가셨다.    
공무원이 되고 4.3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쯤 4.3업무를 한 적이 있다. 4.3 업무를 맡게 되면서 어릴 적 봉인되었던 할머니의 4.3이 떠올랐고, 4.3평화공원에 봉안 될 위패 명단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면서 지역별로 정리된 위패 사이에 할아버지 함자를 찾아봤던 일이 있다.
할아버지는 그 당시 제주 인구의 10%에 달하는 희생자 중의 한명으로 4.3평화공원에서 역사의 기록속에 남아 있고, 올해도 4월은 어김없이 찾아 왔다.  
4월 3일은 평화공원에 만개한 벚꽃만큼이나 많은 추모객들이 발길이 멈추지 않는 온 제주가 희생자를 추모하는 날이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 19 비상사태로 인하여 유족과 도민들은 추모 발길을 잠시 멈추어야 할 것 같다.  
올해 치뤄지는 제72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은 코로나 19로부터 유족과 도민의 안전을 보호하고 청정 제주를 지켜내기 위하여 규모를 축소하여 간소하게 봉행된다고 한다. 참가인원도 제한함에 따라 부득이 4.3 평화공원을 방문하는 유족과 도민은 12시 이전에는 가급적 방문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모두가 힘든 때이다. 코로나 19를 이겨내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비롯 추념식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가정과 직장에서 중계방송을 시청하면서 단. 1분간만이라도 묵념 사이렌에 맞춰 하시던 일을 잠깐 멈추고 무고하게 돌아가신 수 많은 4.3 희생자들을 추모의 시간을 가져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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