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2년 5개월이 넘는 동안 표류하고 있던 법안이 있었다. ‘일 안하는’ 국회, ‘반대만 하는’ 국회가 끝까지 처리를 미뤄온 법안이다. 4-3특별법 개정안이다. 20대 국회가 결국 마지막 회기에도 법안통과를 외면해 법안이 자동으로 폐기처분되게 됐다. 심히 유감스런 결과다. 20대 국회에는 민주당의 오영훈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부개정안을 비롯, 5건의 개정안이 계류 중이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난 12일 제주4.3특별법 전부개정안을 상정해 심의했지만 결국 여야가 합의를 이루지 못해 법안이 상임위 단계에서 사산의 운명을 맞게 됐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작년 9월과 11월에 이어 이날도 국회를 찾아 여야의원들을 상대로 법안 통과에 성의를 가져달라고 통사정을 했지만 결과는 이렇게 허무한 끝을 봤다.

국회가 뭐 하는 곳이냐, 민의를 대변하는 곳이 맞는냐는 비판과 질타가 이어졌어도 마이동풍의 한심한 모습만 보여준 게 대한민국 20대 국회였다.

4-3특별법 개정안이 어떤 법안인가. 군사재판을 무효화하고, 국가공권력에 의한 폭력의 추가 진상조사를 실시하고, 연로할 대로 연로해진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배상과 보상을 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법안을 반대하거나 처리를 미룰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4·3의 ‘완전한’ 해결이라는 국정과제가 이렇게 헛구호가 돼버렸다.

법안 통과와 관련해 일찍이 문제가 됐던 것은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예산이었다. 이날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4·3 배보상에 대한 당정의 엇박자가 그대로 드러났다. 회의에서 정부 관계자는 “4·3 사건에 대한 배상·보상 절차가 사회 갈등을 유발할 수 있고 막대한 재원이 소요될 수 있다”며 정확한 비용추계와 공론화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국회 입법은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실상 개정안에 반대 입장을 냈다.

국회 행안위에 따르면 4-3특별법에 따른 피해자 배보상 액은 1인당 평균 1억3000만 원 정도다. 현재까지 피해자로 인정된 1만4363명을 곱하면 1조8000억 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기획재정부는 이 금액 자체도 부담스러운 수준이지만, 추가 진상조사가 이뤄질 경우 더해질 비용과 다른 양민 학살사건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국가재정이 쪼들리고 있는 상황도 변수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경제규모로 봤을 때 이 정도의 예산은 그리 큰 액수가 아니다. 500조원이 넘는 국가전체 예산의 0.5%도 안 된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이 어떤 규모였으며 그 반인륜적 범죄가 어느 정도였던가. 물론 돈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껏 2조 원도 안 되는 돈이 목숨을 유린당한 수만 명의 비극과 어찌 비견될 수 있단 말인가.

정치인들이 야속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당한 사람만 억울하고 죽은 사람만 비참했다. 4-3이든 5-18이든 부마사태든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은 반드시 그 진실이 규명되어야 한다. 한국 현대사의 이 처참한 비극들을 정리하지 않고는 정의로운 공동체 건설은 불가능하다.

20대 국회에 걸었던 마지막 기대가 결국 무산됐다. 국회의원들이 무슨 국민의 대표라고 그들에게 세비란 이름으로, 자료비니 활동비니 하는 명목으로, 여기에 보좌관들 급여까지 4년간에 걸쳐 1인당 수십억 원을 쏟아 부었단 말인가. 무노동 무임금이라도 적용해야 한다. 너무 허탈하다.

4-3특별법 개정안의 처리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입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 활동과 책임 문제, 그리고 국회의원 개개인에 대한 대우와 급여문제 등등 다시 검토하고 재정립할 것들이 참으로 많다. 이제 21대 국회에서 절대 다수당이 된 여당과 문재인 정부를 다시 한 번 믿어보자. 20대 국회는 정말 ‘진상’ 국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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