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결국 일을 벌였다. 남북화해의 상징을 폭파했다. 어쩌겠다는 것인가. 역사를 후퇴시킨, 참으로 어이없는 도발이다. 김정은 남매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두 사람이 했을까.

북한은 지난 16일 오후 2시 50분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머지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지 사흘 만이다. 남북관계가 사실상 평창 올림픽 이전의 ‘화염과 분노’ 국면으로 뒷걸음질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어떤 곳인가. 남북 간 교류협력의 상징이자 소통의 공간으로 건립·보수에 우리 예산 170여억 원이 들어간 남북의 자산이다. 그동안 보여준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가 무색해졌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국민 모두가 유린당했다.

북한 측은 “북남 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가 다시 진출해 전선을 요새화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도 했다. 그 건 그들의 자유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 밖에.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 임동원 전 국정원장 등 원로들과의 오찬 회동에서 북한에 대해 “굉장히 실망스럽다”,“도에 지나쳤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때로는 미국도 설득하고 김정은 위원장도 설득했다”면서 자신은 그동안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청와대도 이번에는 가만있지 않았다. “폭파도발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북측이 상황을 계속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경우 그에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했다. 국방부도 “북한이 군사적 도발 행위를 감행한다면 우리 군은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통일부도 “북측은 비상식적이고 있어서는 안 될 행위를 저질렀다”며 “우리 국민뿐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고 했다. 통일부는 이날 연락사무소에 대한 전기 공급을 중단했다.

미국도 발끈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 북한에 대한 기존 경제제재를 1년 더 연장하며 북한을 ‘비상하고 특별한 위협’으로 재규정했다. 그냥 두고 보고 있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북한이 ‘정상’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보여준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의 치적을 휴지통에 처박거나 뒤집기를 반복해 온 끝에 대북정책의 영속성을 갖지 못한 것이 우선 아쉬운 점이다. 그러다 보니 남북관계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쳇바퀴 돌 듯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번 도발의 빌미가 됐던 ‘삐라’문제도 그렇다. 북한으로 보내지는 ‘삐라’는 벌써 단속을 해야 했다. 대북전단은 북의 ‘존엄’인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비판하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형을 죽인 패륜아라거나 그의 모친이 백두혈통이 아닌 후지산 혈통이라는 것 등 북 정권을 자극하는 내용들이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사소하고 좁은 식견으로 대사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 백두혈통이면 어떻고 후지산 혈통이면 어떻다는 얘긴가. 괜한 시비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짓이다. 김경협 의원의 말처럼 “한반도의 분단과 긴장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분단장사들’ ‘무기장사들’의 영업논리”가 아니라면. ‘삐라’문제는 남북 상호간의 신뢰에 관한 문제다. ‘삐라’살포는 하수(下手)의 의미없는 도발이다.

북측은 앞으로도 무슨 일을 더 벌일지 예측불허다. 70여년간 분단상태에 있는 한반도는 세계가 주목하는 시한폭탄이다. 협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양쪽이 자제와 대화를 견지면서 평화상태를 유지할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만큼 양측의 상호신뢰는 필수다. 신 냉전 시대를 맞아 남북은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어리석은 판단으로 역사를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

정부는 아울러 한미일 3국 안보공조와 중국 문제, 무력의 ‘비대칭성’을 커버할 국가 안보전략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한다. 비상한 각오와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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