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국보라고 했던 무애 양주동 선생은 10살 때 술을 마셨다. “어머니가 없는 틈을 타서 내가 큰 사발을 들고 광에 침입하여 술독의 뚜껑을 젖히고 우선 한바탕 내음을 맡아본 뒤 몇 사발을 연거푸 마음껏 퍼먹었다”

무애는 그러고는 뻗어서 사흘을 내리 잤다한다(문주 반생기). 술과 관련된 에피소드라면 무애와 쌍벽을 이루는 수주 변영로 선생 또한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변영로 선생은 신문사에 원고를 써주기로 하고 돈을 가불받아 지금 성균관대 자리에서 지인들과 흥겹게 마셨다. 권커니 받거니 취한 그 일당(?)이 옛사람의 풍류를 따른다 하여 옷을 홀딱 벗고 소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려다,

제지하는 경찰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였다(酩酊 40년). 술의 ‘유단론’을 천명(?)한 시인 조지훈 선생이 살아계신다면 주선(酒仙) 또는 주현(酒賢), 주성(酒聖) 중 하나의 작위(爵位)를 부여하지 않았을까 싶다.

▶ 지금도 술을 약으로서 마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독으로 마시는 사람들이 꽤 많다. 술만 먹으면 주정하는 사람, 시비 거는 사람, 눈물을 질질 짜는 사람 등 주태(酒態)도 사람에 따라 가지가지다. 술이 생긴 이래 인류는 술과의 ‘타협’과 ‘전쟁’을 반복하고 있다.

비즈니스 등을 위한 수단으로서 ‘타협’하고, 건강을 지키고자 ‘전쟁’을 벌인다. 과음이 건강을 해치고 치매의 위험성을 몇배 높인다는 과학적 연구가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어도 음주량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최근 도민들의 평균 음주비율이 75.6%로 전국 평균보다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주목을 끌었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 음주비율이 8.2% 높다 하니 여다(女多)의 섬에 전례 없는 여성 음주가 화젯거리가 됐다.

▶앞의 ‘유단론’에 따르면 18단을 폐주(廢酒)라 하여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난 사람을 말한다. 슬과 더불어 가장 불행한 사람을 지칭하고 있음이다.

16단 주성(酒聖)은 마셔도 안 마셔도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15단 주현(酒賢)은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14단 주선은 수도 삼매에 든 사람이다. 최하위인 1단 부주(不酒)는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을 말하는데, 요즘 같이 음주 율이 부쩍 높은 세상에서는 1단만 딴 ‘선수’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호평을 받는다. 어차피 주성이나 주현, 주선이 되기 그른 주당들은 1단 유단자로 자족하심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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