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준-산업경영공학 박사/한국산업인력공단 제주지사장

우리나라에서 국가기술자격제도가 태동한 시기는 1950년대라고 볼 수 있다. 전쟁으로 파괴된 산업시설을 대대적으로 복구하는 데 있어 미국과 우방 국가들의 경제·기술원조를 바탕으로 전개할 수밖에 없던 시기였다. 복구사업에 필요한 기술인을 확보하기 위해 인력의 양성과 배출에 관한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였다. 이를 계기로 정부 각 부처에서는 해당하는 기술분야 자격시험제도를 새로 도입하거나 일본의 자격면허를 모방하여 운영하면서 국가기술자격제도가 점차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1960대 들어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으로 더욱 다양한 기술을 가진 인력이 필요해지면서 자격분야가 크게 확대되었고 자격취득자 수도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이에 맞춰 정부는 1973년 국가기술자격법을 제정하여 난립 양상을 보이던 자격제도를 정비하고 1976년 국가기술자격시험 업무를 전담하는 한국기술검정공단 설립했다. 모든 정부 부처에서 시행되던 자격시험을 한국기술검정공단으로 일원화하여 위탁함으로써 자격시험체계를 정립하게 되었다. 한국기술검정공단은 지금의 한국산업인력공단(HRDK)의 전신이 된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시대를 맞으면서 국가자격시험은 일대 위기에 처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치르는 자격시험과 사람들이 모이면 안 되는 방역수칙 앞에서 두 과제 모두 성공시켜야만 하는 백척간두에 놓이게 되었다. 계속되는 시행 중단과 재개 속에서 방역단계별 신속한 대응으로 단 한 건의 감염 확산 없이 370만 명의 수험자를 대상으로 한 국가자격시험을 완벽히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코로나 감염병 확산에도 불구하고 취업에 필요한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시험에 응시하고자 수험자들이 몰려들었다. 반대로 시험장 측에서는 시험 시설·장비 임차와 시험위원 참여를 기피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동안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일이었다.
국가자격시험은 산업현장에서 실제 활용되는 시설·장비가 구비된 시험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국산업인력공단(HRDK)은 오랜 기간 국가자격시험을 운용하고 있지만, 전국 어느 지역에도 안정적인 종합시험장을 구비하지 못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대부분 외부기관의 시설·장비를 활용하는 실정이다. 인적자원에 대한 직무역량 평가의 중요한 척도로서 국가자격시험은 무엇보다도 공신력과 투명성을 생명으로 한다. 평가를 위한 시설·장비 등의 외부기관 의존이 심해질수록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시험관리에는 한계가 있다. 기업은 무한 경쟁속에서 시설이나 장비를 제공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더 이상 국가자격시험 시행의 명분으로 교육훈련기관이나 산업현장의 일방적인 협조와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제주지역에도 국가자격 종합시험장 구축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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