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산업정보대학장   이   용   길

 의형제가 있다. 삼국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와 같이 3형제다. 한 고향에서 낳고 자랐으며 학교와 군(軍)마저도 같다. 시골에서 성장했지만 지금은 모두들 도시에서 나름대로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중 한 사람이 어렵사리 장만한, 그것도 노모(老母)의 도움으로 마련한 주택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마음이 너무 좋아 친구의 보증을 섰다가 당한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술을 즐기는 까닭에 건강도 염려스러웠던 때가 있었다. 타고난 개척자적 정신과 뛰어난 실력은 그로 하여금 주로 신설사(新設社)에 근무하게끔 만들었다.

 다른 한 사람은 상관으로부터는 능력을 인정받고, 부하로부터는 존경을 받는 훌륭한 직장인이다. 하지만 한때 감정적인 인사조치에 의해 현직에서 물러나야 할 위기에 처하였다.

그러나 그의 두둑한 뚝심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가 그를 엄습하였다. 지루하고 오랜 재판과정을 거쳐 수습은 됐으나, 심적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또 한 사람 역시 중견직업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원만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그 역시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이다.

믿었던 직장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직한 후, 이른바 백수생활도 경험하였다.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그는 오로지 업무에 충실하였다. 남에게서 오해받는 것을 몹시 싫어하는 그는 조용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근무하였다.

그러다가 상상치도 못했던 그 기관의 장(長)이 되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그는 지금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산다는 것이 다 이런 것인가. 다른 사람의 눈에는 모두들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으나,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닌가 한다. 흔히들 삶은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은 갖은 역경을 극복하고 난 뒤에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리라. 환란과 단련 그리고 인내와 소망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난관을 이겨내야만 영광의 월계관을 쓸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인생에 있어서는 무슨 일이든 우연이라고 한다. 또 무슨 일이든 필연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운명이라고 칭하고 있다. 인생은 운명인 것처럼 인생은 희망이다.

운명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있어서 살아있다는 것은 곧 희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희망에 의해 완성된다. 이러한 희망은 사랑으로 인해 태어나고 사랑은 희망에 의해 성장하여 간다.

희망에 사는 사람은 언제나 젊다. 생명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젊음을 의미하고 있기 까닭이다. 희망이 있음으로 해서 꿈이 있고 미래가 있으며 전진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한 그 어떤 고난과 시련도 두렵지 않을 터이다. 오직 승리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태양처럼 밝은 희망을 품고 사는 일이다.

 위의 의형제 이야기는 논픽션이다. 극히 보통 사람들의 얘기에 불과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기에, 한 예(例)로 들어 본 것이다.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든 유별나게 사는 사람이든, 그 누구도 걱정 근심 없이 잘 살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이러한 삶이 우리 인간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서로 돕고 아끼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한다. 아득바득 아귀다툼을 벌이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헛되고 잘못된 것인가를 머지않아 깨닫게 될 터이니까 하는 말이다. 희망을 가지고 먼 장래를 내다보는 가운데 오늘의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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