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소프트제주 편집장   문   소   연

“뭐? 기저귀 도서관이라고?”
모방송에서 ‘기적의 도서관’ 운운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됐을 때 누군가가 그랬다. 잘못 듣고 나온 소리지만 그럴 듯하다고 웃었드랬다. 기저귀 찬 아기시절부터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오죽 좋으리 해가며.

‘기적의 도서관’은 한동안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고, 급기야는 우리 제주에도 번듯한 어린이전용도서관이 두 군데나 생기기에 이르렀다. 얼마나 신나고 좋은 일인가? 개관행사 때 살짝 구경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뜻 깊은 사랑과 노고가 느껴져 흐뭇하고 대견했다.

그 뜻 깊은 사랑과 노고 속에 허순영 씨의 땀방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허순영 씨는 지난 1998년부터 ‘설문대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해 왔다.

동화작가이기도 한 그이는 아이들 눈높이를 생각하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설문대’를 이끌어 갔다. 몇 년 내리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따끈따끈한 새 책들을 더 많이 대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지, 궁핍해가는 자신의 살림을 속상해 하지는 않았다.

해마다 쌓이는 적자가 옆에서 지켜보기도 아슬아슬해 참 별스럽게 산다 싶다가도, ‘설문대 어린이도서관’ 속에서 ‘설문대’의 책과 프로그램을 통해 눈빛을 반짝이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바로 저 맛 때문에 하는구만.” 내심 부럽기도 했다. ‘설문대’를 지키려는 그이의 열정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아이들과 엄마들 입을 통해 은근히 번진 소문으로 ‘설문대’가 점점 좁아져 갈 즈음, ‘제주도지사 공관’을 공공장소로 쓰도록 하겠다는 소리에 그이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었다.

그곳이 어린이전용도서관으로 ‘딱’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어린이도서관으로 변신한 도지사공관이라! 거인의 정원을 헐어 어린이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니,

상상만 해도 따뜻하고 평화롭고 흐뭇하지 않은가? 그이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제안서를 냈다가, 그 기대를 실망으로 푸욱 꺼뜨려야 했다. 어찌 된 셈인지 당시 도지사가 수리까지 해가며 도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러다 그이는 모 방송국에 어린이도서관이 지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적어냈다. 그리고 그이는 ‘기적’처럼 꿈이 실제로 이어지는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린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동화를 쓰면서, 동화를 읽고 쓰는 어른들의 모임을 만들면서, 어린이들만을 위한 도서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설립해 몸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해온 그이인지라, 전국적으로 그이만한 전문가도 드물다고 한다.

더불어 ‘기적의 도서관’은 발상에서 완공까지 그이의 생각과 땀방울에 힘입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이는 제주에 생긴 기적의 도서관은 물론이고 순천, 진해에 생긴 기적의 도서관, 서울 본부까지 수없이 드나들며 자신의 전문성과 능력과 마음과 사랑을 한껏 쏟아 부었다.

완공된 어린이도서관은 이제 막 하드웨어 작업을 마쳤을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운영하느냐 하는 소프트웨어에 도서관의 효능과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도서관 운영의 노하우와 프로그램 창조력을 갖고 있는 그이가 당연히 제주에 있는 어린이도서관 일을 맡을 줄 알았다.

전국적으로도 드문, ‘피부로 느껴 열성을 다하고 발로 뛰는 어린이도서관 전문가'가 제주사람이어서 참으로 다행스럽고 자랑스럽다 여겼었는데….

그러나 그이는 순천어린이도서관 일을 하러 곧 제주를 떠난단다. “제주에서 일하고 싶어 했는데, 왜?” 물었더니, 그이는 “제주시가 다른 지자체의 운영사례를 따르겠다고 했는데 정말 약속을 지키는지 지켜봐 달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제주 기적의 도서관에서 민간인인 그이를 관장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그랬나? 그렇다면 왜?

아무튼, 그이는 어딜 가든 반짝이는 기질과 열정으로 사랑이 넘치는 기적의 도서관을 똘똘하게 만들어낼 것이다. 그곳이 순천이든 서울이든 “어린이도서관을 위한 일인데, 뭐” 싶다가도 제주를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그이 같은 ‘인재’를 놓치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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