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조   정   의

여름철은 맛에 대하여 신경을 써야 되는 계절이다. 자칫 구미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식상하게 되기 일쑤인 게 여름철이다.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 것은 행복의 한 조건이다. 입맛을 가린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아무거나 배만 채우면 되는 시절을 견뎌온 세대들 앞에서 입맛을 논한다는 건 사치스럽게 보일지도 모르나 지금은 맛에 대한 개념이 예전 같지 않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이런 장면을 보았다. 방송의 내용은 이 고장 어른들을 모신 장수 프로였다. 칠십을 넘긴 부부 네 쌍을 모시고 삼십대의 젊은 아나운서가 퀴즈를 내놓았다. “표준어로 고소하다는 말을 제주도 말로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고 물었으나 네 쌍의 부부는 서로를 쳐다볼 뿐 얼른 대답을 못했다.

표준어로 고소하다는 말을 제주 고유의 말로 어떻게 표현하면 될 것인가. 어느 팀에서도 선 듯 떠오르는 말이 없는 듯 노인들은 고개만 갸웃거렸다. 한 참 후 그 중 한 팀에서 ‘코시롱, 하다라고 말을 했으나 그 말은 정답이 아니라고 진행자는 고개를 흔들었다.

쉬운 말인 듯한데 대답이 나오지 않자, 아나운서가 제주 말 중에 베로 시작되는 맛이라고 힌트를 주었다. 그제 서야 한 팀에서 “베지근하다”, 라고 대답을 하자 맞는 말이라고 박수를 쳤다.

어느 라디오 프로에서도 향토사학자라는 분이 나와서 베지근한 맛을 표준어로 담백한 맛, 고소한 맛이라고 설명하는 걸 들었다. 향토사학자의 말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으나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제주에만 있는 베지근한 맛을 굳이 고소한 맛이나 담백한 맛에 맞추려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고소한 맛은 냄새와 가까운 표현이다. 제주에서 흔히 말하는 냄새가 ‘코시롱’하다가, 고소하다와 비유되는 말이다.

요즘은 맛을 표현할 때 담백(淡白)하다. 또는 고소하다는 말을 많이 쓴다. 담백한 맛은 깨끗하고 산뜻한 맛으로 표현되는 게 사전적 의미다. 깨끗하고 산뜻한 맛은 일상적인 맛인 오미(五味)에도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런대도 제주 고유의 맛인 베지근한 맛을 표준어로 표현하려고 애쓰는 것은 선 듯 이해가 되지 않는다. 듬삭하고 베지근한 맛은 제주에만 있는 특유한 맛이다. 이 맛을 표준어로 표현하려고 애쓸 이유가 없다. 듬삭하고 베지근한 맛을 표준어와 맞추려는 것은 제주 특유의 맛의 정서에도 어긋난 발상이다.

제주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듬삭하고 베지근한 맛은 제주만이 향유하는 맛에 대한 ‘프레미엄’이다. 쉽게 말하여 일상적으로 느끼게 되는 다섯 가지 맛인 신맛겢棅픸쓴맛겦탓低픸짠맛을 매일 맛보면서 듬삭하고 베지근한 맛을 덤으로 맛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옛 어른들은 잔치 집에 다녀와서는 돼지고기 맛이 듬삭하더라는 말을 했고 제사 때 구운 옥돔을 맛보면서는 베지근하다는 말을 했다.

제주의 별미인 옥돔구이나 삶은 돼지고기를 먹으며 담백하다, 또는 고소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옳은 표현이 아니다. 돼지고기의 맛은 듬삭하고 옥돔구이는 베지근한 맛일 뿐, 다르게 표현할 말이 없다. 그러기에 듬삭하고 베지근한 맛을 다른 맛과 연계 시켜서는 아니 된다. 듬삭하고 베지근한 맛, 이 맛은 제주에만 있는 맛의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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