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언제나 선거철이면 어린 시절 보았던 면(面)의원 선거 때의 일이 눈에 삼삼하다. 그 때 친척 삼촌이 면 의원에 출마했는데, 그 집에만 가면 술과 고기가 있었고 큰솥에 국수가 삶겨지는 걸 보았다.

고무신이며 세탁비누도 눈의 띄었다. 그렇게 달포를 연일 잔치를 치르고 삼촌은 면의원에 당선되었다. 친척들은 가문의 영광이라며 큰 잔치를 벌였다. 잔치 뒤의 설거지가 채 끝나기 전인 몇 달 후, 5?6 쿠데타가 일어나 삼촌이 어렵게 쟁취한 면의원 배지는 떼어지고 말았다.

그 후 서슬이 시퍼렇던 70년대의 유신정권을 거쳐 몇번의 공화국에서도 국회의원 선거철이면 돈 이야기가 난무했다. 선거가 곧 돈 판으로 착각할 정도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이러한 세태를 풍자하는 말로 빨리 망하고 싶으면 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지난 16대 총선만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선거가 끝나고 돈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꼬리를 물었다. 갈비탕 한 그릇을 얻어먹고 50배의 과태료를 물게 됐다는 이번의 선거를 보며 ‘아!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을’ 하고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금품수수를 신고하고 50배의 보상을 받았다는 말은 옛날의 선거풍토가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는 이들에게는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선거 모범국으로 알려진 영국에서도 19세기까지는 유권자 매수행위가 성행했다고 한다. 영국이 선거문화가 바뀐 것은 강력한 처벌규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883년에 제정된 부패 및 위법행위 방지법에는 부패행위를 한 후보는 영원히 출마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법정 비용을 초과하거나 사무장이 위반해도 당선무효가 되어 당선자를 퇴출시키는 법이 영국을 선거 선진국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1인당 우리 돈으로 1천3백만원 안팎의 비용만 쓰고도 국회의원 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영국을 생각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의 불법대선자금을 쓴 정당들이 건재하는 우리의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선거가 끝나면 당선되고도 선거사범으로 전락하는 당선자의 추한 모습들을 보아왔다. 그 중에 몇몇 정치인은 의원직을 상실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런데 돈선거를 치르고 당선되어 고발을 당하고도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기까지는 3년이 더 걸리는 것은 ‘아이러니’다. 어느 국회의원의 경우는 16대 초선에서 당선되어 17대 총선을 코앞에 둔 2003년 12월에야  대법원에서 당선무효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가 선거사범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기간은 3년7개월이었다.

법의 맹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어긴 자는 정치판에서 영원히 도태시미는 선거문화가 뿌리내려져야 되는 것이다. 선진국은 국민 소득만 높아서 되는게 아니다.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고 손으로는 돈을 주고받은 썩은 정치풍토를 쓸어낸 것, 그것이 우리가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 첩경(捷徑)임을 말하여 무엇하랴.

                                                                                                                                  소설가  조  정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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