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   현 춘 식

  춥고 베고프던 시절에 우리 할머님들께서는 찢어 지게 가난한 사람들이 신세 타령을 하면, ‘살암 시민 살아 진다’고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사시는 할머님들께서는, ‘어떻게 사시느냐’고 물으면, 먼저 한숨부터 길게 내쉬시면서, ‘사는게 뭐산디?’ 한마디를 객혈처럼 토해 내신다.  이어서 ‘늙으민 재기 죽어 사주’.  아, 절망의 말씀이시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먼 바다에서 밀려 오는 파도처럼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 사회의 삶의 현장에 언제 커다란 해일로 덮칠 것만 같아 왠지 불안하다.  경기불황이 몰고 온 심적 금단 현상이다.

  서민들의 생활은 주름살이 깊어지다 못해 망가지고 있다.  지갑을 열지 않아서 경기가 부진이란다.  먼지만 풀풀나는 지갑을 열어 본들 무슨 요술방망이가 나올까?  이런 와중에 대책은 백가쟁명이다. 

성장만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가 활성화 된다는 산업화 시대의 해법이 제시되는가 하면,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처방도 만만치 않다.  그런가 하면, 부유세를 만들어 서민들의 교육비, 의료비, 주택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렇듯, 진단은 백화만발한데 처방전은 오리무중이니 백성들의 생활만 골병들 수 밖에 더 있는가.

  어느 택시기사님들께 요즘 살아 가기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소태 씹은 인상으로 사납금 내기가 겁난다고 말한다.  단골 이발사 아저씨는 사람들이 이발횟수가 전만 못해 수익이 신통치 않다고 한탄이다.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파리 날리기는커녕, 파리도 배고파서 날아 다닐 힘조차 없단다.  건설경기가 바닥을 기다보니 하루 일하고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들어 기진맥진이란다.  동네슈퍼마켓 아저씨는 예전엔 자식대학까지 보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손사래 친다. 

농부들의 농심은 멍들다 못해 새까맣게 숯덩이가 되고 있단다.  하우스 밀감을 생산하시는 분들은 기름값부터 걱정한다.  돌고 도는게 돈이라는데 그 많던 돈들은 다 어디로 가버려 이런 고통을 주는가.

  소위 부잣집이라고 인식되는 기업쪽은 어떤가.  대기업은 현금이 쌓이는데도 투자환경이 좋지 않다고 해외로만 눈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는 근로자들의 파업이 피해가 크다고만 엄살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한데도 끼어들기조차 힘든 형편이니 그 고통이야 어떨까.  중소기업도 난망인 모양이다.  근로자를 구하지 못해 생산량이 차질을 빚고, 만들어 놓은 물건이라도 잘 팔려야 한 숨 돌릴텐데 자금줄 압박에 부도의 악몽에 시달리고 있단다. 

기업이 이러다 보니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 자리가 바늘 구멍일 수 밖에.  빈둥빈둥 노는 아들, 딸 모습만 보아도 부모님은 애간장이 타게 마련이다.  한 때 경제혼란의 주범으로 몰렸던 부동산 시장도  된 서리를 맞아 되살아날 기미가 요원한 모양이다. 

보다 못한 정부가 건설경기를 활성화 시킨다고 새로운 아파트 정책을 제시했지만, 실물시장은 시쿤등한 반응이다.  올해 상반기 코스닥시장에서 퇴출되는 회사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도 현실경제의 어려움을 반증하고 있는 사례다.

  이러다 보니 빚쟁이만 늘어가고 있다.  쥐꼬리만한 봉급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어려워 우선 신용카드 박박 긁어대고 돌려 막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하고만 사례가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전 국민이 빚쟁이화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술권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현실은 이처럼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 넣고 있다.  그러나 현실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서는 안된다.  ‘가난은 나라도 못막는다’는 속담이 태어날 정도로 어려웠지만 초근목피로 살아 온 우리 민족이다. 

입에 거미줄 치면서도 ‘?냥정신’을 생활철학으로 삼아 버티어 온 제주인들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백성들이다.  절망은 없다.  ‘쥐구멍에도 볕 들날 있다’고 했잖은가.  ‘사는게 뭐산디’ 대신에 ‘베롱?날 믿으멍 살아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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