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16강 진출을 하지 못해 안타까웠지만 국민이 하나가 되는 축제의 분위기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중심이 된 붉은 악마 응원은 잠시 일상적 의무로부터 해방을 느끼게 했다. 붉은 악마는 권위적 억압에 의한 동원이 아니라 개인의 열정에 바탕을 둔 새로운 축제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며 사회 구성원간의 경계와 차별을 넘어서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온 국민이 함께 한 진정한 축제였을까 하는 물음에는 온전히 동의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요즘 TV CF의 소재 또한 온통 월드컵이다. 각 기업에서는 월드컵을 이용하여 이윤추구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중 ‘붉은 악마’의 공식후원 업체인 KTF의 방송광고인 ‘월드컵 1차광고 탄생편’을 생각해 보자. 이제 막 세상에 나와 탯줄도 자르지 않은 갓난아기가 화면 가득 등장한다. 그리고 48,396,208번째 붉은 악마라는 자막이 보인다. 나레이션은 “이 아이도 언젠가 뜨겁게 대한민국을 외칠 겁니다.”라고 하자 ‘깨어나라’, ‘우리는 붉은 악마다’라는 자막이 나타난다. 이 광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느낌은 다양할 것이다. 정말 감동적인 CF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섬뜩함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선택할 기회도 없이 붉은 악마가 되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메시지처럼 들린다는 사람도 있다. 그 명칭으로 인해 ‘한기총’에서는 반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정서에 더욱 가까운 ‘붉은 도깨비’로 호칭을 바꾸면 어떨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응원도구로 도깨비 방망이를 잡고 “골 나와라 뚝딱”하다보면 행운과 기적이 함께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서다. 하지만 이 호칭에 대해서도 약한 인상이 든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응원단의 호칭이 무엇이든지간에 중요한 것은 전 국민이 거부감 없이 호응할 수 있는 호칭이면 더욱 좋지 않을까.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지 4년, 지금 한국은 또 다시 독일 월드컵으로 흥분을 하였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미디어와 자본, 국가가 일반의 관심을 사회적 ‘광기’, 맹목적인 열정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원래 축제는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욕망이 생산되고 표출됨으로 만들어지는 놀이다. 그런데 지금 대자본이 많은 돈을 들여 제작한 광고물들은 순수한 축제의 의미를 벗어난 채 ‘국민’을 매개로 기업의 선전과 상품 광고에 대중을 묶어놓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월드컵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열정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월드컵 광기를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매체나, 거대한 자본에 의해 우매한 대중이 양산되는 일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방송이 해야 할 일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적인 열정과 자발적인 축제의 분위기를 유도해야하며 월드컵의 분위기에 의해서 잊혀 질 수 있는 사회적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붉은 악마 또한 자발적 참여조직인 만큼 건전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흥분과 감동의 열기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에 향하는 의혹의 시선, 참여를 강요당하는 분위기 등은 자제되어야 한다. 자칫 대세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소외되는 문화가 양산될 수 있는 지금의 응원문화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요즘 월드컵 한국 경기를 보지 않았다고 하면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취급하는 것을 넘어서서 “너 한국사람 맞아?”하면서 마치 매국노 취급을 하듯이 바라보기도 한다. 월드컵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보다는 당장 닥친 현실적인 삶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월드컵이 가져다주는 집단 엑스터시는 순간적이라고 생각하며 월드컵이 끝나도 정작 자신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열광했던 사람들이 월드컵이 끝났을 때 오히려 더 허무감을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다 하더라도 이제는 혼자 보다는 집단적으로 즐기려는 풍토가 젊은 세대에 두드러질 것이다. 집단 행동하는 젊은 세대의 영향력을 이미 보았듯이 앞으로도 한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함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수혁 주독일 대사는 지난 24일(한국시간)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독일 언론에 붉은 악마응원단들이 “질서 정연하고, 응원 후 쓰레기 하나 없이 뒷마무리를 하는 모습들이 계속 보도됐고 이러한 언론보도가 한국 국민들의 이미지, 그리고 한국의 절도 있는 응원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하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런 한국의 젊은이들이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 신화를 창출하는데 기여를 했었다. 그리고 이번 월드컵에서도 전 세계에 여러 가지 모범을 보였듯이 앞으로 우리사회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강   연   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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