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교실에 점심 도시락을 못 가져오는 학생이 있었다. 담임인 미모의 여선생님은 매일 자기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남학생은 선생님의 은혜에 감격하였고, 그 도시락을 감사의 눈물에 말아 먹으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세월이 흘러 그는 절실히 소원하던 검사가 되었다. 이 무렵에 여선생님은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 살인 누명을 쓰고 법정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담당 검사가 초등학교 때 돌보아 주었던 가난한 제자였다. 여선생님은 검사의 활약으로 무죄가 밝혀져 석방되고, 스승과 제자는 감격 속에 다시 만나게 된다. 좀 지루한 감이 있으나 “검사와 여선생”이라는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해 보았다. 1948년 무성영화 시대의 작품으로 변사(辯士)의 구성진 목소리와 더불어 장안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영화이다. 당시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숱하게 눈물을 흘렸다. 이 영화는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 김지미 주연으로 다시 제작되어 역시 인기를 끌었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퍽 신파로의 감상적인 줄거리에다가 사제의 정이라는 교훈성이 가미되면서 눈물을 유도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그런데 오락기관이라고는 전무했던 시절에, 변사의 목소리가 유도하는 대로 실컷 울었던 일은 메마른 삶에 큰 활력을 주었다. 그래서 “생활에 들볶이는 일그러진 영혼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움직이는 사진의 그림자밖에 없다.”(심훈)는 말을 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슴을 찡하게 하는 대목으로 여선생님이 자기 도시락을 제자에게 건네주는 장면을 들 수 있다. 당시 우리는 그토록 가난하게 살았다. 그런데 도시락은 그 후 오랫동안 학생들의 등교에 반드시 지참하는 품목이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어머니에게 가장 힘겨운 일이 새벽에 도시락을 챙기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 처절한 고뇌와 중노동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어머니의 이러한 고난은 사라졌다. 학생들의 지참 품목에 도시락이 없다. 책가방과 함께 필수품이었던 도시락 가방도 백화점에서 사라졌다. 급식비만 제대로 납부하면 되기 때문에, 가난한 제자에게 도시락을 건네주는 아름다운 여선생님의 자리도 없어졌다. 학생들은 급식소에서 일제히 식사를 한다. 우리는 참으로 편리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편리함 속에서 문득 향수에 젖는 순간을 체험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최근에 학교 급식 사고가 생겨 전국적으로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급식소에서 식사를 한 수많은 학생들이 집단으로 식중독을 일으키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학사 일정의 변경까지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보통의 사태가 아님이 분명하다. 문제는 급식소를 학교가 직접 경영하지 못하고 납품업체에 하청을 준 데서 비롯되었다고 들린다. 그리하여 많은 학교에 납품하는 큰 기업체의 식품에서 무슨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있다. 사태의 진상은 당국의 철저한 조사에 의해 분명하게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문득 황금의 노예가 되어 버러지처럼 꿈틀거리는 인간의 왜소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덜 익은 열매를 씹었을 때처럼 씁쓸하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정력을 쏟는 것이 악덕일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자본주의의 미덕이다. 문제는 방법이요 혼이다. 생명에 위협이 되는 요소가 털끝만치라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생명만이 존귀하다는 혼이 우리 안에 되살아나야 할 것이다.

김  영   환 (전 오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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