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말머리

제주시 용담동 다끄내(修根洞) 곁 바닷가에 ‘말머리’라는 곳이 있다. 여기에는 배 큰 정서방과 관련된 전설이 전한다. 배 큰 정서방은 다끄내 사람이었다. 배가 몹시 커서 한 섬 쌀밥과 돼지 한 마리를 먹어야 겨우 배가 차는 정도였다. 그래서 배 큰 정서방이라 불리었다. 그는 배가 큰 대신 힘이 또한 장사였다.

부모들은 어떻게든 이 자식을 먹여 살려 보려 했지만 도저히 먹여 살릴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관가에 보고하여 해결해 주도록 요청했다. 관가에서 조사해보니 정서방은 무서운 장사였다. 이놈을 그대로 살려 두었다가는 나라를 해칠 우려가 있겠다는 의논이 돌았다. 마침내 정서방을 죽이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정서방은 관가에 불려갔다. 죽이려는 눈치를 채고, 정서방은 ‘내 소원을 한 번만 들어 준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라고 하였다. 그 소원이란 한 번 실컷 배불리 먹어 보고 싶다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관가에서는 쌀 한 섬의 밥을 하고 소를 한 마리 잡아 주었다. 배 큰 정서방은 밥자로 드근드근 떠 담으며 한꺼번에 다 먹어 치웠다.

 “나를 죽이려거든 큰 바윗돌을 두 팔과 두 다리를 묶어 매어 배에 실어다 바다에 던지면 되오.” 난생 처음 배부르게 먹은 정서방은 이렇게 말하고 벌렁 드러누워 코를 골기 시작했다. 관가에서는 큰 바윗돌을 팔과 다리에 각각 묶어 바다에 실어다 던졌다. 그래도 정서방은 곧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았다.

3일 동안이나 물 위로 우끗우끗 올라와서는, “어머님, 나 삽네까, 죽습네까?”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부모는 가슴이 아팠으나 살아 나와서 배고파 죽는 것보다 지금 죽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여 살라고 하지를 않았다. 사흘이 지나자 배 큰 정서방은 소리 없이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그 후 몇 시간이 지나자, 이 바닷가에 커다란 백마가 바닷물 속에서 머리를 내밀고 나왔다.

백마는 물 위로 머리를 치켜들고 하늘로 향하여 세 번 크게 울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말은 배 큰 정서방이 탈 말로서, 주인을 불러 보았으나 대답이 없자,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만일 정서방이 살아 있었다면 이 백마를 타고 큰 장수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말이 머리만 내밀었다가 들어가 버렸다고 해서 이곳을 ‘말머리’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문당 제주도전설>

항파두리성과 말꼬리의 빗자루 삼별초의 김통정장군은 재(灰)와 빗자루를 항파두리 성내(城內)에 비축해 두었다가 지평선 쪽으로 적의 함선이 보이기 시작하면 토성위에 재를 뿌리고 말꼬리에 빗자루를 달아 토성 위를 달리면 연기가 자욱한 것처럼 보여 적들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가곤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5. 광정당 말무덤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덕수리에는 있는 광정당은 예로부터 신령이 세기로 유명하다. 이 당 앞을 지날 때는 누구나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 만일 그대로 지나가면 말이 발을 절어서 죽게 마련이다. 조선시대 숙종때 이형상이 제주목사로 부임해서 이 당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당 앞에 이르자 군졸들이, ‘이 당은 신령이 세어서 말을 탄 채로 지나갈 수가 없으니, 황송하오나 하마(下馬)하시어 걸어가십시오’하고 권고했다.

이상하게도 갑자기 말이 발을 절어서 말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것이었다. 이 목사는 곧 이 당의 매인심방을 불러들였다. “이 당의 신령이 사실 세냐?” “예, 그런 줄로 아옵니다.” “그러면 이 말을 잡아서 곧 굿을 하고 신령을 보여라.” 누구의 영이라 심방은 벌벌 떨며 말을 잡아 큰 굿을 시작했다. 굿이 한참 진행되어 가니, 당에서 큰 뱀이 나와 꿈틀거리며 혀를 낼름거렸다. 이형상 목사는 곧 군졸을 시켜 그 뱀을 베어 넘기고 죽은 말을 그 앞에 묻어 주었다. 이 무덤을 ‘말무덤’이라 하는데 일본강점기때 그 위로 신작로를 내려고 파 헤치니 말뼈가 무수히 나왔었다. <남제주의 전통과 얼, 서문당 제주도전설>

6. 百中祭

1)목동 “百中” (차귀뱅듸에 얽힌 전설)

 해마다 음력 7월 14일이 되면 여러 마을에서는 온 마을사람들이 모여 ‘백중제(百中祭)’라는 농사를 위한 제사가 지내지고 있다. 이 ‘백중제’라는 제사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차귀벵디에는 백중이라는 목동이 살았다. 하루는 그가 바닷가에서 마소를 먹이고 있는데, 하늘에서 옥황상제가 내려왔다. 웬일인가 싶어 가만히 보고 있자니까, 옥황상제는 바다를 향하여 “거북아!” 하고 부른다. 잠시 후 거북이 바다 위에 떠올랐다. 백중은 한층 더 호기심이 생기어, 가까이 숨어서 엿듣기로 하였다.

“거북아, 오늘밤에 석 자 다섯 치의 비를 내리게 하고, 폭우 대작하게 하라.” 이 말을 남기고 옥황상제는 하늘로 올라갔다. 백중이 생각하여 보니 큰일이다. 석 자 다섯 치의 비와 폭풍이 내리치면 홍수가 날 것은 물론이고, 가축과 곡식이 성할 리 없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는 언덕에 올라가 옥황상제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거북을 불러내었다. “아까는 깜빡 잊어서 말을 잘못했다.

 비는 다섯 치만 내리게 하고, 바람은 불지 않게 하라.” 거북은 알았다는 듯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 날 저녁에 비는 백중의 말대로 내리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한편 옥황상제가 하늘에서 굽어보니 자기의 명대로 되지 않았다. 크게 노한 옥황상제는 차사에게 백중을 잡아들이도록 하였다. 백중으로서도 이러한 벌을 예기치 못했던 바라가 아니라 그는 옥황상제의 벌을 받느니 스스로 죽는 것이 낫다 생각하고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러한 백중의 지혜와 용기 때문에 그 해는 대풍작이었다.

농민들은 한결같이 백중의 은혜를 감사히 여겨 해마다 그가 죽은 날이면 제사를 지내어 그의 혼을 위로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날 (백중이 죽은 7월 14일)은 ‘백중날’이라 하여 물맞이와 해수욕을 하는 풍속이 있다. 이 날의 물맞이나 해수욕은 만병에 약이 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 날에는 마늘 따위도 심으면 잘 되어서 백 가지에 벌어진다고 한다. 이와 같이 ‘백중제’는 한 목동인 백중의 혼을 위로하기로 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오늘날 이 고장에서는 풍년을 기원하는 농민의 뺄 수 없는 귀중한 제사가 되었다. <제주도설화집>

2) 백중제(백중 마불림제)

말과 소를 기르는 사람들이 매년 음력 7월 14일 밤에 제사를 지낸다. 이를 태우리코시, 테우리맹질 등으로 부른다. 말과 소가 탈 없이 잘 자라고 질병에 걸리는 일이 없기를 축원하는 것으로 옛날 백중귀신, 남의 집 장남(테우리)이던 정의의 신 정수남이의 넋을 위한 고사를 지내면 집안의 말과 소가 번성한다고 한다. (사찰에서는 7월 15일에 조상의 은공을 길이기 위해 백중제를 지낸다.)

3) 말테우리 제사

 ①말테우리 말시는 음력 7월 14일 밤중에 이루어진다. 이 날을 백중이라고도 한다. 일년중 조수가 가장 높이 들어오는 날이면서 또한 여름과 가을의 길목이다. 알드르 마을 사람들은 바닷가로 물맞이를 가고, 웃드르 마을 사람들은 한밤에 산으로 가서 말테우리 말시를 목축신(牧畜神)에게 올린다. 이것은 마소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이 다름 아닌 한라산 목축신의 은덕이라고 생각을 하여 그 감사의 제사가 바로 말테우리 이다. 이러한 풍습은 한국이나 다른 민족에서 여름과 가을의 문턱인 백중날 목축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없으니 말테우리 는 제주도 고유의 목축문화가 만들어 놓은 제의(祭儀)요 축제인 것이다.

 ②말테우리 백종이가 방목지의 풀 백가지 종을 알고 말을 잘 돌보아 말이 잘 번식되었으나 후손이 없어 마주가 말테우리의 고마움을 기리기 위하여 음력 7월 14일 자시(11~1시)에 방목장에서 매(밥), 생닭, 떡(팥을 넣지 않는다), 채소, 계란 3개, 술, 5가지 과일을 설상하여 같이 방목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2001년 8월 구좌읍 하도리 양도봉 71세)

 ③백중굿은 한여름에 오곡을 비롯한 씨를 맺는 온갖 것들, 백종(百種)의 번성을 기원하는 제의를 당에서 지낸다.(제주여성문화). 마(馬)의 번식생리를 보면 봄부터 여름철까지 발정과 분만을 하는 계절번식동물이고 음력 7월 되면 발정이 종료되어(마무리 발정:임신된 마는 임신3~5개월에 발정이 오는 말들이 있다) 암말은 임신이 되었고 마(馬)를 이용한 농사일이 일시적으로 끝나는 시기이므로 마(馬)의 번성(불림)을 마조신(房星)과 테우리에게 기원하는 의식(祭)으로도 생각된다.

((63)제주마와 관련된 신화ㆍ전설 및 민속 등 Ⅱ에서 계속)

장    덕   지 교수

제주산업정보대학 애완동물관리과(제주마문화연구소장ㆍ제주도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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