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읍 영락리에 있는 제주도예원에 갔다가 옹기그릇을 몇 개 사왔다. 찌게를 담아 먹음직한 제법 큰 그릇 하나하고 듬직하게 생긴 잔 두 개.

잔을 들여다보며 “이거 맥주 잔하면 딱 좋겠네.” 했더니, 원장이 “조심하셔야 할 걸요.” 그런다. 옹기잔에다 맥주는 물론이고 어떤 술이라도 따라 마시면 맛이 부드럽고 좋아져서 평소 주량을 훨씬 넘게 된다는 것. ‘에이, 설마…’ 했다, 솔직히.

며칠 뒤에 마침 한 무리의 벗들이 집으로 쳐들어올 일이 생겼고, 그 잔을 실험하기에 이르렀다. 입은 많고 옹기잔은 달랑 두 개밖에 없는지라 기다려가며 따라 마셔본 벗들은 “어? 정말이네? 맥주 맛이 달라.” 하더니, 알루미늄 깡통에 담긴 채도 마셔보고, 유리잔에도 따라 마셔보고, 맛을 비교해 보느라 난리가 났다. 나중엔 다른 잔엔 못 마시겠다고 저마다 옹기잔을 차지하려 다투다가 급기야는 찌게그릇에까지 따라 마시고….

“그러니까 이게 옛날 허벅 만드는 식으로 만든 거다, 이 말이지?”
“제주도예원이 어디에 있다고?”

다들 구경 가야겠다고, 다른 건 몰라도 술잔은 꼭 사야겠다고 익살들을 떨었다. 하여간 그날 제주도예원 원장의 경고(?)대로 모두들 자신들의 주량을 훨씬 넘고 말았다. 그래도 다음날 숙취는 없었다고 부러 연락들을 해왔으니, 옹기가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사람을 생각하는 옹기

두해 전, 제주도예원을 처음 찾아갔을 때는 입구에 ‘인사옹(人思甕)’이라 새겨진 커다란 나무판이 있었더랬다. ‘사람을 생각하는 옹기’라, 참 근사하다 했었는데 요번에 갔을 때는 없었다. 대신 ‘석요(石窯)’라고 반듯하게 쓰인 간판이 서 있었다.

“인사동하고 음이 비슷하다고 그 이름 쓰는 곳에서 뭐라 하더라구요. 아, 그럼 우리가 거둘 테니 그 이름으로 부디 발전하시라하고 바꿨습니다.”

강창언 제주도예원 원장의 말이다. 그 이름 쓰지 않는다고 인간을 생각하는 옹기가 아니랴만, 그래도 괜히 섭섭했다.

제주옹기는 참 오랜 세월을 제주사람들과 함께 해온 생활필수품이었다. 강원장의 조사연구에 따르면 문헌기록으로만 짐작해도 최소한 1400년대 이전부터 대량생산되고 유통되었다고 하니, 그 역사와 전통 만으로도 가히 자랑할 만하다.

그 두껍고 질긴 맥이 양은과 플라스틱에 서서히 밀려나더니 1960년대 말에 완전히 뚝 끊겨버렸더랬다. 그런 채로 30여년 세월이 흐르고 옹기생산기술을 가진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제주문화유산에 유별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강창언 씨가 제주전통옹기 단절의 심각성을 느끼고 안타까움을 참지 못해 복원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고 수년간의 우여곡절 끝인 1997년, 완벽한 복원에 성공했다. 30여년 만에 그야말로 ‘부활’을 한 것이다.

무엇보다 제주전통옹기 생산기술을 가진 ‘장이’들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밖에 없었다는 점, 그리고 공정의 복잡함과 까다로움을 이겨내려면 혼을 거의 빼놓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제주전통옹기 복원성공은 하나의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세계에 하나밖에 없다는데

제주엔 세계에서 유일하달 만한 문화유산이 적지 않다. 제주로서는 그게 가장 큰 자산이고 재산이지 않은가? 제주전통옹기가 그렇다. 옹기 자체도 그렇지만 옹기를 구워내는 돌가마도, 옹기 생산과정도 세계적으로 독특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옹기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그 과정 과정이 고스란히 ‘자연’이다. 흙, 물, 돌, 나무, 불, 바람, 햇빛, 정성, 기다림이 절묘하게 만나 제주옹기가 되는 것인데, 어느 순간 불을 덧 때어 옹기표면을 자연발색 시킨다는 부분에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제주옹기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그릇일 뿐만 아니라 숨을 쉬는 신비한 그릇인 것이다.

제주옹기는 전통방식에서 한 치의 변칙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에(그랬다가는 참담할 만큼 실패한단다) 생산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제주도예원은 그 귀하고 훌륭한 문화유산인 제주옹기를 완벽하게 복원해놓고도, 제주옹기의 앞날을 암담해 하고 있다.

‘생산’과 ‘전수’까지 책임질 힘은 없고, 그것을 포기하면 또 맥이 끊길 테고 해서…. 그 책임과 의무가 ‘어디’의 몫인지는 상식일 텐데, 그 ‘어디’에서만 모르고 있나보다. 복원해놓은 지가 언젠데 여태 방문은커녕 관심도 없는 것 같다는 걸 보면.

문   소   연   방송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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