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5월 당시 부통령이었던 이시영(李始榮)은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통령직을 사임했다.

‘6ㆍ25 전쟁’의 와중이었다.
“전쟁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는데도 탐관오리는 도처에 발호하여 나라를 좀먹고 정권은 국가위기나 민생보다는 권력유지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였다.
여기에 ‘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하는 일없이 국록(國祿)만 축낸다”는 뜻이다. “하는 일없는 공무원이 부정부패만 일삼는다” 는 말이다.

당시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와 공직자들에게 보내는 일갈(一喝)이었다. ‘시체와 다름없는 공무원’. 독하고 무섭지만 아프게 폐부를 찌르는 일침이다.

▶‘시위소찬’은 옛 중국의 장례문화에서 유례 된다. 그때는 사람이 죽으면 앉혀놓고 장례를 지냈다.
시(尸)는 주검이다. 시신을 말함이다. 시위(尸位)는 바로 죽은 사람이 앉는 자리다.

그러나 시신을 앉혀놓고 장례를 치르는데는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시신의 자리에 어린아이를 대신 앉혀 장례를 치르게 됐다. 그 아이를 시동(尸童)이라 했다.

시동은 하는 일없이 시체처럼 가만 앉아 있으면 됐다. 그래서 문상객들의 예나 받고 차려주는 밥만 먹으면 그만이다.
소찬(素餐)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는다는 뜻이다.

‘시위소찬’. 그렇다. 하릴없이 국민의 세금만 축내는 무능하고 부패하고 무사안일의 공무원들에게 보내는 경구나 다름없다.

▶최근 우리주변의 공무원들은 어떤가. 공무원들이 감귤원 폐원사업과 관련한 작업인력 인건비를 횡령하거나 하천 정비사업비로 개인 감귤원 도로를 개설했다가 입건되는 등 공직을 더럽힌 부정부패 사건을 보면서 떠올려 보는 그림이다.

개 사료나 비료용으로 써야 할 ‘폐사 넙캄가 식용으로 둔갑해 시중에 유통되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뒷 북’이나 치며 제 할 일 못하는 공무원, 그러면서도 봉사해야 할 주민 위에 군림하여 한줌도 안되는 권력을 무소불위(無所不爲)로 행사하다가 민원(民怨)의 대상이 된 공무원 등 크고 작은 공무원 독직(瀆職)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일각에서는 공무원 사회를 ‘철 밥통’이라고 빈정거리고 있다. 하는 일없어도 퇴임 때까지 끄떡없이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비아냥에 다름 아니다.

“하는 일없는 공무원이 부정부패를 일삼는다”. 53년전 이시영 초대부통령의 일갈했던 ‘시위소찬’이 현재의 제주공직사회에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가마솥 더위’처럼 열불만 난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