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이래 13년 동안이나 제주 섬을 뜨겁게 달궜던 해군기지 건설 논란은 한때 수면(水面) 밑으로 가라앉는 듯 했다. 지난해 8월 김태환 지사의 ‘해군기지 논의 중단 선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군기지 건설 문제는 올 8월 30일 해군 당국의 강행 의지 표명과, 지난 1일 김태환 지사의 ‘합의 설’ 부인을 계기로 또 다시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도민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해군기지 예정 후보지들인 위미2리와 화순리 주민들은 6~7일 제주도를 방문, 반대 투쟁 의사를 재차 전달했으며, 한나라당 도당도 제주도에 대해 “도민의 편에 서서 조속히 정책적 결정을 하라”고 촉구했다.

도의회 농수축지식산업 위원회도 6일 ‘해군기지추진상황보고 회’를 열고, 당국자를 출석시켜 해군-해양수산부-제주도간의 시나리오 존재 여부를 따졌다. 그리고 도민 갈등을 조속히 치유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앞당겨 실시하는 것이 어떠냐고 추궁했다. 어떻든, 해군기지 문제는 건설이든 철회든 해를 넘기지 말고 올해 안에 매듭을 지어야 한다. 제주해군기지 논쟁 13년 동안 이 고장에 남긴 게 무엇인가. 갈등이 갈등을 낳았고, 그 갈등은 다시 분열을 낳았으며, 분열이 또 다른 분열을 불러들이는 악순환뿐이었다.

그래서 해군과 제주도와 도민 사이에는 불신만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우리는 해군-제주도-도민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한다면 해군기지 문제는 아주 쉽게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 해법은 지금까지의 감정의 골을 백지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 그래서 누구든 이미 약속한 자는 그 약속을 꼭 지켜야 하며,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든 상대의 약속을 철저히 믿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해군 당국이 애당초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거론할 때부터 주민 합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점을 잊지 않고 있다. 아니, 주민 동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사업추진 자체가 어렵다는 말을 해군 스스로가 기회 있을 때마다 되풀이 해 왔다.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6일 저녁 ‘MBC 도민 대토론회’에 출연한 제주해군기지 기획단장 강승식 대령은 이것을 더욱 구체화시켜 말했다. “도민이 반대한다면 국회와 관계부처를 통한 예산 확보가 불가능해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도민 합의가 없으면 해군도 이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 점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 김태환 지사의 뜻도 같다. 김 지사도 지난 1일 기자회견을 갖고 “도민 합의 없이는 제주해군기지를 강행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다. 김지사의 이 말은 도민 합의가 없을 경우에는 자신도 해군기지를 반대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좋을 성싶다. ‘도민 합의 없는 해군기지 불가’가 어디 해군이나 김태환 지사의 뜻 만인가. 김 지사가 얘기했듯이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고, 지난해 6월 이해찬 국무총리도 그랬다.

이처럼 “도민 절대 다수가 반대하면 제주해군기지를 건설하지 않겠다”는 것은 국가, 아니 국가가 아니라면 적어도 정부 최고기구인 청와대-총리실-해군-특별자치도의 대제주도민(對濟州島民) 약속임이 분명하지 아니한가. 그렇다면 해법은 명료하다. 제주도민들은 대통령-국무총리-해군-김태환 지사의 약속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철석 같이 믿는 것이다. 반면에 대통령-총리-지사도 ‘도민 합의가 없으면 해군기지를 건설할 수 없다”는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다만 도민합의가 있을 때에는 당연히 해군기지를 건설해야 하는 것도 약속 이행이다. 따라서 이제 남은 것은 도민의 몫뿐이다. 그 몫은 절대 다수의 도민들이 해군기지 찬-반 중 어느 것을 택하고 있느냐를 가려내는 일이다. 그 방법은 어떤 것이어도 좋을 것 같다. 주민 투표, 서명 작업, 공신력 있는 여론 조사, 그 외 다른 방법 등, 도민의 뜻만 정확히 알 수 있으면 된다. 그 결과에 따라 약속을 지켜야 할 책임은 대통령이요, 총리요, 해군이요, 지사에게 있다. 이렇게 해서 일을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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