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미국 측 수석대표인 웬디 커틀러는 지난 23일, “감귤을 협상 품목에서 제외해 달라는 제주도의 건의를 검토해서 협상에 임하겠다”고 공식 석상에서 공언했었다. 이 자리에서 커틀러 수석대표는 또한 “제주 감귤은 경제적-상업적인 면을 떠나 역사적-문화적인 측면까지를 고려해 판단하면서 협상하겠다”는 구체적인 말까지 했다. 그런데 커틀러 수석은 그 하루 뒤인 24일에는, 역시 공식 석상에서 감귤문제에 대해 표현을 다소 달리해서 말했다. 그는 이날 무역협회 주최 만찬 장에서 “제주도민들에게 감귤이 얼마나 중요한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협상과정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그는 “제주도민들의 삶을 급격히 변화시키는 협상은 없을 것”이라는 점도 밝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틀에 걸친 커틀러 수석의 말들을 들으면서 비록 표현은 다르지만 그것이 그의 진심에서 울어 나온 것이라면 기대를 걸만도 하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국가간의 협상에서 외교적 수사(修辭)가 필요하고, FTA 반대 시위자들의 마음을 희석시키기 위한 물타기 식 희언(戱言)이 요구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말들을 그런 식으로 믿고싶지 않다. 커틀러 자신이, 감귤은 제주도민의 생명 줄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적인 가치에서도 도외시 할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틀러 수석이 감귤에 대해 이틀째 언급하던 바로 그날인 24일, 미국 협상단이 감귤류에 대해서도 개방을 요구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커틀러의 계속된 감귤 발언은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고, 반대 시위자들의 마음을 희석시키기 위한 물타기 식 희언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만약 커틀러의 연속된 말들이 진언(眞言)이 되지 않고 식언(食言)이 된다면 그것은 제주도민을 농락하는 행위며, 식언가(食言家)라는 오명을 벗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커틀러의 말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자 한다. 앞으로 있을 5차 협상에서는 그의 말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번 회의장 주변의 극렬 시위 이상으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며, 그 책임은 미국 측에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