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전임도정 얘기를 쓰는 것도 이젠 질려버릴 정도다. 쓰는 사람도 그러거니와 읽는 독자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보태주진 못할망정 쪽박일랑 차지 말라고, 가버린 사람을 지상(紙上)으로 불러내어 다시 거론하는 것은 우리 제주도 같은 온정주의가 센 사회에서는 쪽박까지 차버리는 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죽은 권력에 매질하면 뭣하나?”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객석에서 굿이나 보다가 박수나 쳐주면 될 것 아닌갚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가 전임 도정에 대한 연민의 정의 표시라면 후자는 냉소적이다. 그러나 “오욕으로 점철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 비록 야박 하다 이야기를 들을지언정 할 얘기는 하고 넘어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전임 제주도정의 빗나간 정책과 행위는 다방면에서 조명하는 움직임들이 가시화 되고 있다. 그런 것은 이를 맡은 사람들의 일로 돌리고 오늘은 좀 속물적인, 남방셔츠 이야기를 하며 지면을 매워볼까 한다. 때는 그 셔츠가 ‘썩 잘 어울리는(?)’ 한 여름이기도 해서 너무 객쩍은 얘기는 아닐 듯 하다.

‘남방셔츠’ 명분 뒤에 숨겨진 내밀성

몇 년 전부터 도정 책임석의 지시에 의해 제주도청 전 직원으로 하여금 남방셔츠를 입도록 한 사례처럼 ‘도정의 성격’을 축약적으로 시사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남방셔츠 입히기는 세계적 관광제주의 이미지를 선전한다는 명분을 달고 행해진 것이었지만, 실상은 도정 책임석과 사적 친분있는 업체의 돈벌이가 주된 목적이었던 것은 공무원 사회가 너무 잘 알고 있다. 명분 뒤에 숨겨진 이런 사실을 알면, 그 독특한 창의성과 기교며, 내밀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년 동안 자기를 지지해준 사람들에 대한 과감한 지원과 봐주기, 반대로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도민이나 공무원에 대한 외면과 인사 불이익 등 탄압의 행적은 이젠 여기서 논할 가치조차 없는 진부한 얘기에 속한다.

요즘은 이런 얘기들이 업 그레이드 돼 “이 ‘세계’에서는 이와 비길 수 있는 자가 감히 있을 수 없다”는 평가로 발전하고 있다. ‘남방셔츠 입히기’는 이런 도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마치 중국의 인민복, 북한의 노동복을 연상하게 되는 남방셔츠는. 이 두 지역의 제복이 사회주의를 상징하듯 당시 도정의 ‘상황’을 표현하는 ‘플래카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이 두 지역에서 제복 입기가 그 지역 주체세력들의 이념실천의 수행평가로 이행됐다고 한다면, 도정의 남방셔츠 입기는 도정 책임석에 대한 ‘모두 빠짐없는 충성’의 종대(縱隊)에 세우는 것이었다. 19세기 세계를 풍미하다 지하로 숨어버린, 낡은 역사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패거리 문화’가 제주도청에서는 남방셔츠 입기로 부활을 본 셈이다.

공무원도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어

남방셔츠를 파는 업체는 쉽게 떼돈을 벌고, 도정은 이를 입은 사람과 입지 않은 사람으로 나눠 충성파와 비충성파를 가려냈다. 더욱이 이것을 다가올 선거에서 내편과 네편으로 구분할 수 있었으니 전임 도정은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는 수완이 특별했음을 이제 장삼이사(張三李四)도 꿰뚫고 있을 터이다.

전임 도정의 도덕성의 바로미터인 성희롱 사건과 선거법 위반 사건, 무능과 야합에 의한 정책이라는 무려 1백억원의 예산을 들이면서 추진한 호접란 등의 정책 실패는 ‘남방셔츠 행정’이라는 ‘구멍’으로 엿본다면 당연한 귀결에 이른다. 공공복리를 추구하는 도 행정에 패거리의 이권이나 챙기는 행정을 접목했으니 그 행정이 도덕성이며, 혈세 낭비며 앞 뒤 재면서 할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그 책임론을 따지자면 이를 맹목적으로 따랐던 공무원들도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이 내심으로 불평을 하면서도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인사에서 불이익을 우려해서였다. 아무리 인사에서 불이익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를 과감히 거부하지 못한 배짱있는 공무원이 도청에 없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무능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디지털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 특권과 반칙이 없는 투명한 행정의 시대에 대한민국에 살고 있으면서 기자는 아직도 “‘패거리 행정’을 하고 끼리끼리 나눠먹기를 해도 무사하다”는 인식이 제주사회를 관류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고 있다.

남방셔츠 입히기 같은 오욕의 과거를 바로잡지 않고, 그 과거에 ‘포용이라는 포장’으로 감싸서는 오늘의 제주 도정은 과거의 도정과 크게 차이 날게 없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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