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에 70년간 뒤틀린 가족관계 회복 요원
잘못된 호적에 트라우마 깊어…국가보상도 소외
제주4·3특별법 개정으로 인지청구 특례조항 시행
올해 용역 착수…실질적 지원·제도개선 이뤄져야

이순열씨가 지난해 12월 22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진행된 ‘제주4·3사건으로 인한 호적불일치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에서 발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김진규 기자
이순열씨가 지난해 12월 22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진행된 ‘제주4·3사건으로 인한 호적불일치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에서 발언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김진규 기자

이순열씨는 1948년 9월 29일(음력) 아침에 태어나 이날 저녁 아버지를 잃었다. 이씨가 태어난 당일 제주4·3사건에 연루됐던 아버지를 포함한 5명은 궤에 숨어 있었다. 일행 중 1명은 겨우 도망쳐 목숨을 건졌지만 아버지를 포함해 4명은 붙잡혀 그날 살해됐다.

이후 어머니가 다른 남성과 재혼하면서 이씨는 할아버지에서 외할머니로, 육지에 사는 사촌 고모네 등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이씨는 우여곡절 끝에 큰 아버지의 딸로 호적에 등록됐지만 학교는 다니지 못했다.

이씨는 2018년 아버지 유해와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지만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와 검사를 중단했다. 20개의 검사 중 4개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우봉에 있었던 이씨의 아버지 묘는 15년 전 고향인 북촌리 공동묘지로 이장됐다. 5년 전 즈음 옆에 있던 가족묘로 다시 옮겨졌다.

혹시 유해가 바뀌었나 싶기도 하지만 또 다시 파내 검사할 수는 없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22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진행된 ‘제주4·3사건으로 인한 호적불일치 실태조사 보고 및 토론회’에서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중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죽기 전에 마지막 소원은 아버지 호적에 오르는 것”이라고 흐느꼈다.

송철웅씨(1947년생)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빌레못굴에서 같은 날 사망했다. 송씨는 큰 아버지의 아들로 호적에 올려졌다. 이후 4·3희생자로 신고하기 위해 호적을 정정하려 읍사무소를 찾았지만 ‘안 된다’고 해서 포기했다. 부모의 유해는 2018년 화장돼 가족 공동묘지로 옮겨졌다.

희생자 유해가 있지만 유해가 바뀔 가능성과 희생자의 유해 화장으로 법적 유족이 되지 못한 사례다.

희생자 유해도 없고 희생자가 독자이거나 살아 있는 형제가 없어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며, 희생자의 유해가 있지만 유전자 추출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부모의 묘가 있더라도 “이제 와서 묘를 파 검사하는 것은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 할 수 없다”는 유족도 많다.

2021년 가족관계 불일치 실태조사를 진행한 오화선 제주4·3연구소 자료실장은 “실태조사를 위해 유족들과 만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국가폭력으로 부모를 빼앗긴 분들이 ‘딸이라서, 여자라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것”이라며 “31명을 만났는데 희생자 중 무호적자인 2명을 제외한 29명 가운데 25명이 딸(여성)”이라고 설명했다.

오 실장은 “대부분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29명 중 11명이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는데 딸(여성)이 10명”이라며 “그 시절엔 학교에 보내고 공부시키기 보다는 식구들 생계가 더 크고 중요한 문제이기도 했지만 그 짐이 딸들에게 더욱 가혹했다”고 강조했다.

오 실장이 조사한 결과 이들은 교육기회의 박탈로 성장기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정보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국가폭력으로 인해 딸(여성)은 이중의 피해자다.

4·3으로 아버지를 잃은 강순자씨(1944년생)와 이정숙씨(1948년생)는 혼자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낸 것만도 훌륭하다고 할 만큼 고된 삶의 연속이었다. 강씨와 이씨는 “학교랑 마랑 어느 절에, 난 일만 일만 해수다. 그저 이름 석 자만 씁니다”라며 “차라리 고아원에라도 갔으면 공부라도 해실꺼 아니꽈”라며 울먹였다.

글을 읽고 쓰는 게 어렵다보니 스스로 위축돼 원망과 트라우마의 골이 깊을 뿐만 아니라 모든 정보가 제한적이고 항상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오 실장은 “이들뿐만 아니라 친자관계 확인이나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는 유족들이 많다”며 “법적인 문제여서 잘 모른다”고 말했다.

오 실장은 “이처럼 가족관계 불일치로 인해 법적 유족이 되지 못한 이들이 그간 실질적인 유족으로서 역할을 다하면서도 법적 제도로부터 소외당해 왔는데 2022년부터 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또 다시 소외당하고 권리를 제한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며 “4·3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덧입혀져 더 큰 아픔으로 남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오 실장은 “2021년 12월 9일 4·3특별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돼 인지청구 특례조항이 시행중”이라며 “올해 행정안전부가 진행하는 가족관계 관련 용역을 통해 틀어진 가족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실질적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영훈 국회의원과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 4‧3희생자유족회 임원들이 지난해 12월 22일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서 제주4·3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념하는 참배를 진행했다. / 제주4·3평화재단 제공
오영훈 국회의원과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 4‧3희생자유족회 임원들이 지난해 12월 22일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서 제주4·3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기념하는 참배를 진행했다. / 제주4·3평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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