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명절 극복기

비건을 실천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입장, 태도가 바뀌었다는 강진아, 신재희, 이길희씨(사진 왼쪽부터). 이들은 육식이 지구를 지속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채식만으로도 충분히 신체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비건을 실천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입장, 태도가 바뀌었다는 강진아, 신재희, 이길희씨(사진 왼쪽부터). 이들은 육식이 지구를 지속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채식만으로도 충분히 신체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 가운데 생선, 고기, 유제품, 달걀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될까. 특히 가족 모두가 모인 명절 식탁 앞에서 ‘생선과 육고기, 유제품을 먹지 않는다’고 선언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명절에 친척들로부터 흔히 듣는 입시, 취업, 결혼 문제 등과 마찬가지로, 비건들에겐 명절 식탁에서 마주하는 음식은 그야말로 ‘고역’이다. 제주에서 비건을 실천하고 있는 4명에게 비건을 실천하게 된 계기와 명절에 얽힌 일화를 들어봤다.

비건참치유부초밥. 대체육으로 만들어진 참치를 사용했다.
비건참치유부초밥. 대체육으로 만들어진 참치를 사용했다.

“채식도 맛있어요, 명절에 가족 초대해 채식 대접”

이길희(36)씨는 TV다큐멘터리를 통해 육식의 윤리적.환경적 문제를 접하고 비건을 실천한지 벌써 2년째다.

이씨는 “그동안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마트에서 마주했던 고기들은 생명이 배제된 상태였다. 그러다 공장식 축산 환경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그 이후로 내 몸을 이롭게 하는 것도 있지만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 비건을 실천하면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 관행 농법 등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비건을 선언하고 실천하면서 가족들이 가장 많이 걱정했다. 이씨는 “부모님과 외식을 할 때는 제가 주로 비건 식당을 예약했고, 명절에는 고기를 먹기 싫어서 가족을 초대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 음식을 만드는 번거로움과 고단함보다 육식을 마주하는 게 더 힘들었기 때문”이라며 “채식으로 만든 음식을 맛보신 부모님께서 ‘이렇게 맛있을 수 있냐’, ‘기름진 음식보다 가벼워서 좋다‘고 신기해 하셨다”고 말했다.

비건을 실천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몸’이었다. 이씨는 “건강 때문에 병원을 자주 다녔는데, 좋아하던 소고기를 끊었더니 장염으로 응급실에 입원하는 일도 뚝 ‘끊겼다’”며 “무엇보다 어떻게 살을 빼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체중조절이 쉬워졌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남편은 지인 찬스로 고기를 먹지만 저는 고기 음식을 전혀 먹고 싶지 않다”며 “그래도 제주도 곳곳에 숨겨진 채식 식당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어서 비건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고 강조했다.

비건콩나물국밥.
비건콩나물국밥.

명절에 만난 부모님 “고기 안 먹으면 큰일 난다”

신재희씨는 올해로 2년째 비건 식단을 즐기고 있다. 8년전 처음 채식을 시도했지만 1주일만에 실패했다. 신씨는 “고기를 먹는 내 모습과 먹으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내 모습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물론 주위 사람과의 관계도 힘들었다”며 “그러다가 2년 전에 완전히 고기를 끊을 수 있었던 계기는 어떤 책에 ‘동물도 마찬가지로 감정이 있다’는 내용을 본 뒤였다. 특히 교통사고 후 읽었던 책 중에 동물들이 식탁에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어서 완전한 비건이 됐다”고 말했다.

신씨와 그의 남편은 채식을 하기 전 너무나도 자주, 그리고 많이 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유기견 활동과 영화 ‘옥자’를 보고난 뒤 남편 또한 ‘주말 한정’ 채식을 다짐하게 됐다.

비건을 선언하고 실천하던 신씨도 명절은 고역이었다. 코로나19가 터지고 비건을 실천하게 된 신씨는 ‘다행히’ 가족들과의 만남도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만난 부모님은 크게 걱정했다. 신시는 “‘왜 그러느냐’는 걱정어린 반응들이 많았다. ‘고기 안 먹으면 먹을 게 있냐’, ‘안 먹으면 큰일 난다’는 반응도 뒤를 이었다”며 “시아버님께서는 아예 말씀을 안하시고 저희 집에 오실 때는 식사를 따로 하고 오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비건을 하고 가장 큰 변화는 몸의 형상이었다. 신씨는 “비건을 실천하고 군살이 정리됐다. 한 마디로 몸이 가벼워졌다. 특히 유제품을 끊고 나서는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던 생리통도 말끔하게 없어졌다”고 말했다.

콩물 떡만둣국. 생선이나 고기로 육수를 내지 않고, 떡국에 흔히 들어가는 계란도 사용하지 않았다. 
콩물 떡만둣국. 생선이나 고기로 육수를 내지 않고, 떡국에 흔히 들어가는 계란도 사용하지 않았다. 

“명절 식탁엔 동물성 식재료 음식 금지 부탁”

수도권에서 화장품 상품 기획 업무를 15년간 한 강진아(43)씨는 올해 1월부로 비건 2년째에 접어들었다. 강씨는 “과거에는 채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이 고깃집 밖에 없었다. 그래서 회사 동료들이 불판에 익은 고기를 향해 분주하게 젓가락질을 할 때 난 쌈 채소만 먹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아예 ‘찍히기’로 마음먹고 채식을 했다”며 “당시에는 채식한다고 하면 ‘다이어트 때문에 하느냐’, ‘유별나다’는 식의 좋지 않은 시선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선망의 대상처럼 여겨지고, 친구들도 ‘그 어려운 걸 하고 있냐’며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씨가 채식을 결심하고 가족들에게 ‘선포’를 하는 순간 보인 반응은 다른 가족들과 비슷했다. 강씨는 “부모님께서 ‘단백질을 안 먹으면 어떻게 하니’라고 걱정을 하셨다. 명절 때 같이 밥을 먹으면 내가 식구들에게 ‘동물 식재료를 식탁에 올려주지 말아 달라’고 까지 부탁했다”며 “다행히 식구들이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기는 저 없을 때 드시는 것 같다”고 웃음지었다.

강씨는 최근 비건, 채식문화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되고 확산되면서 과거보다 훨씬 비건을 실천하기 좋아졌다고 강조했다. 강씨는 “1인 가정을 위한 비건 배달음식도 생긴걸 보니 비건을 실천하기 좋은 세상으로 바뀐 걸 느낀다”며 “혼자 비건을 이야기하면 ‘유별나다’는 취급도 받았는데, 가족과 친구들이 내 몸이 좋아진걸 보고 채식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평소 제주에 와서 흑돼지와 회를 먹던 지인들이 제주에서 채식을 경험하면서 진정한 제주를 보고, 먹고, 누리고 가는 느낌이라고 말을 한다”고 뿌듯해 했다.

비건파이타. 파히타는 토르티야에 다양한 야채와 고기 등을 싸먹는 요리다. 원래는 쇠고기만을 이용했지만, 지금은 닭고기, 돼지고기, 새우, 채소 등을 따로 또는 섞어서 싸먹는다. 하지만 일체의 고기를 빼고 대체육, 채소만 이용했다. 
비건파이타. 파히타는 토르티야에 다양한 야채와 고기 등을 싸먹는 요리다. 원래는 쇠고기만을 이용했지만, 지금은 닭고기, 돼지고기, 새우, 채소 등을 따로 또는 섞어서 싸먹는다. 하지만 일체의 고기를 빼고 대체육, 채소만 이용했다. 

“과거엔 ‘유별나다’고 핀잔, 지금은 대접 받아”

아이스크림을 무척 좋아했던 김란영씨는 2008년 하반기 비건을 시작하면서 아이스크림을 끊기가 너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과감하게’ 비건의 길로 접어 들었다. 김씨는 “지금은 워낙 비건 아이스크림과 젤라또가 잘 만들어져서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비건을 선언하고 실천했지만 정작 가족들은 김씨가 금방 포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씨는 “비건을 시작하니까 가족들이 ‘폼만 잡고 말겠지’, ‘유별나게 한다’고 핀잔을 보냈지만 지금은 많이 공감해 주신다. 비건을 실천한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며 “특히 가족들도 고기를 덜 먹으려고 한다. 비건을 시작한 초반에는 내 음식은 따로 만들어 주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면 모든 음식을 먼저 만들어 주셔서 뭔가 대접 받는 느낌이 든다”고 웃음지었다.

김씨는 비건을 하고 난 뒤 몸의 변화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건은 식사만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옷, 각종 물품, 생활 습관도 포함된다”며 “비건을 실천 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내 가치관이 생각과 말, 행동에서 나타나 가장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비건’문화가 퇴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씨는 “비건을 선택하면 ‘왜 이제야 선택했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비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건 맞지만, 후퇴할 수 없다고 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며 “기후, 건강, 동물 등을 생각하면 비건을 끊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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