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다문화가정 기획–제주에서 만나는 세계
포도뮤지엄 기획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소외·어려움 공감
“피부색과 생김새 지우면 모두가 같은 사람들”…‘차이’ 포용해야

수나씨(왼쪽에서 일곱 번째)와 함께 제주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들. [사진촬영 = 김진규 기자]
수나씨(왼쪽에서 일곱 번째)와 함께 제주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들. [사진촬영 = 김진규 기자]

포도뮤지엄 기획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는 여러 시대의 디아스포라와 다양한 층의 소수자가 처한 소외와 어려움을 공감하고, 진정한 공존과 포용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기게 한다.

분쟁 지역의 국경에서 인류애를 발휘해 전쟁 난민들을 살리기 위해 힘쓰고 이주민들을 돕는 이들도 많지만 이주의 원인이 되는 전쟁과 노동, 기후 등 다양하고 절박한 이슈가 왜곡되거나 무시되고, 근거 없는 막연한 두려움에 혐오 대상이 되기도 한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가 대표적이다. 현재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도 600만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하는 등 이제 난민사태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포도뮤지엄은 추석연휴인 지난 9일 ‘소수자에 대한 공감과 포용’을 주제로 한 ‘살롱 드 포도 달빛 소풍’ 콘서트를 열었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멤버로 구성된 배희관 밴드와 피아노 치는 소리꾼 고영열이 열띤 공연을 펼쳤다.

이날 행사에는 제주대학교에 재학 중인 유학생과 제주지역 이민자 등 100여명의 외국인도 초청됐다.

포도뮤지엄에 전시된 ‘이동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채널 흑백 비디오 [사진 = 김진규 기자]
포도뮤지엄에 전시된 ‘이동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채널 흑백 비디오 [사진 = 김진규 기자]

공연 시작 전 뮤지엄에 들어서자 공간을 가르는 커다란 장막 저편에서 이동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디론가 향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빠르기도 느리기도 하며, 가끔은 힘차지만 때로는 지쳐 보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계 저편에 관심을 두지 않고 갈 길을 가지만 아이들은 막 너머를 바라보고, 밀거나 두드려보기도 한다. 어쩌면 어른들은 예전에 이미 다 해 보았지만 들어갈 수도 없고 나올 수도 없이 막힌 거대한 벽은 낯선 이들을 향해 세워진 경계와 단단한 프레임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이동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채널 흑백 비디오로 한국에 거주하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이 함께 제작한 영상이다. 그림자만으로는 정확히 볼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편견과 다름을 걷어내고 서로의 닮음을 볼 수 있다는 게 작품의 의도다. 피부색과 생김새, 옷차림이 지워진 한 겹 뒤의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포도뮤지엄에 전시된 디파처보드 [사진 = 김진규 기자]
포도뮤지엄에 전시된 디파처보드 [사진 = 김진규 기자]

공항의 디파처보드를 연상시키는 작품도 인상적이다. 안내판에는 각기 다른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증언이 교차한다. ‘사랑이 우리의 대의이다(1948)’, ‘엄마가 어디 있는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2021)’, ‘동생이 살아있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1975), ’폭격이 시작되면 논두렁에 들어가 엎드렸어요(1951), ‘내가 살면서 쌓아왔던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을지 모르겠다(2022)’ 등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안내판을 채운 60개의 문장은 하와이로 이주했던 사진 신부, 강제이주를 당해야 했던 고려인,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소의 유태인, 남아공 인종분리정책의 희생자, 한국전쟁 피란민들, 베트남 보트피플, 시리아와 예멘,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평화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 투발루의 기후 난민,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한 노동자, 혐오와 차별을 이유로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 남긴 말이다.

2022년 5월 기준 등록된 국내 체류 외국인은 201만28862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약 4%에 해당한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한국이 11년 동안(2010~2020년) 난민 지위 인정 사례는 전체 신청자의 1.3%에 불과한 655건이다. 이는 주요 20개국(G20) 중 18번째로 최하위권이다.

국내 다문화인구는 109만3228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2.1%를 차지한다. 다문화가정에서 출생한 자녀는 2019년 기준 총 26만4626명, 국내 19세 이하 인구가 876만명 수준임을 감안하면 100명 중 3명이 다문화가정 2세인 셈이다.

2021년 한국 출산율은 0.8%로 최저치를 기록했고 2023년에는 0.7%대로 붕괴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가파른 인구감소, 인구절벽이라는 현실 앞에서 새로운 이웃에 대한 다양성과 포용성은 우리 모두를 위한 태도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포도뮤지엄 벽면에 희망의 글귀를 쓰고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제주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포도뮤지엄 벽면에 희망의 글귀를 쓰고 있다. [사진 = 김진규 기자]

네팔에서 기계공학 공부 차 제주대학교로 유학 온 수나씨는 “코로나19로 3년간 고국에 가보지 못했다”며 “한국의 추석날이면 고향 생각이 더 많은데 오늘 좋은 공연과 의미 있는 작품을 관람하게 돼 위로된다”고 말했다.

제주대학교 외국인 유학생 회장이기도 한 그는 “본인은 학교와 실험실에서 공부만 해 차별받은 기억은 없지만, 주변 외국인 친구들은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오늘 행사의 취지처럼 서로의 차이보다 공통점에 주목하길 희망한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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