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인데도 후덥지근하다. 여기저기 잎사귀가 노랗고 울긋불긋한 거 보니, 가을이다. 하늘과 바다의 색깔이 같은 파란 날이면, 바깥나들이에도 더없이 좋은 날이다. 지인들과 자연의 벗, 새들을 만나러 하귀리 관전동 해안에 내렸다. 파도는 잔잔하고 밀물이어서, 갈매기 대신에 가마우지와 왜가리가 갯바위에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제주 바다는 새들에게 가장 안전한 피난처인 동시에 신선한 밥상이다. 청둥오리나 가마우지보다 먼저 도착한 재갈매기와 괭이갈매기는 먼 바다로 식탐 여행을 갔는지 많지 않았다. 미처 동행하지 못한 두 녀석이 갯바위에서 쉬고 있었다. 한 녀석은 덩치가 크고 다른 녀석은 작아서 금방 구분이 되었다. 일행 중에 같은 종인지 묻는다. 언뜻 답하기보다 그들의 모습을 잘 살펴보자고 했다. 큰 녀석은 부리로 깃털을 다듬는 모습이 확연한 터라, 쉽게 판별이 가능했다. 부리가 노란색이고 아랫부리에 빨간 점이 있는 재갈매기였다. 작은 녀석은 부리를 깃털에 묻은 채였지만, 다리가 노랗고 몸집이 상대적으로 작아서, 분명 괭이갈매기였다. 한참이 지나도 녀석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부리도 꼼짝하지 않았다. 중간에 살짝 부리를 보여줬지만, 잡담하는 사이에 다시 부리를 숨겼다. 마음 같아선 잠을 깨울까 싶기도 했지만, 녀석을 화나게 할 순 없었다.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녀석의 정체가 밝혀졌다. 괭이갈매기였다. 부리를 보면, 금방 구분이 가능하다. 괭이갈매기의 부리는 노랗고 끝에 검은색과 붉은색의 띠가 선명하다. 비슷하게 생긴 갈매기는 부리 전체가 노란색이며, 아랫부리에 불명확한 까만 반점이 나 있다. 몸 크기로는 갈매기, 괭이갈매기, 재갈매기 순이지만, 갈매기와 괭이갈매기는 부리 색깔을 비교하거나 날개와 꼬리 깃털을 펼친 모습을 봐야 만이 선명하게 구별할 수 있다.
그러니 탐조는 기다림 속에서 재미와 행복을 찾아야 한다. 작은 녀석을 기다리는 동안, 개꿩 두 마리를 보는 행운을 얻었다. 시기적으로 도요물떼새류들이 제주도 해안을 거치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보기가 쉽지 않다. 개꿩과 비슷한 종이 검은가슴물떼새이다. 자주 접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헷갈린다. 일행들은 망원경과 쌍안경으로 확인하고, 녀석의 잰 발걸음을 따라갔다. 갯바위를 걸으면서 갯강구나 게를 잡아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도감을 펼쳐 보이며, 개꿩과 검은가슴물떼새의 생김새를 비교해보며, 녀석의 이동경로를 살폈다. 갈매기와 괭이갈매기처럼, 두 종의 구분하는 법을 토론하면서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돌렸다.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능력은 오랜 경험에서 판가름이 난다. 섣부른 판단과 모호한 대답은 더 큰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과 진실은 시간이 지나도 왜곡되지 않는다. 새들은 하루에도 수많은 날개짓을 한다. 그걸 헛발질이라 우기는 사람이 더러 있다. 분명하지 않은 정보에 울고불고 난리치는 세상인지라,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상식이거나 지혜일 순 없는 것이다. <김완병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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