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비 소식은 없고, 짜증만 나기 십상이다.
옛날 사람들도 추위보다는 더위를 더 무서워했던 것 같다.

고대 중국에서 여름신은 염제(炎帝)라고 했다.
염제는 여름신이자 농경의 신이다.
일설에 의하면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벼이삭을 든 소머리신은 흔히 신농씨로 불리는 동이계종족의 농업신 염제라고 한다.

겨울 추위는 동장군(冬將軍)이라고 표현했다.
황제와 장군이면 격이 다르다.
오직 더위가 무서웠으면 황제라는 표현을, 추위야 기껏 해봐야 장군에 그쳤다.

우리 제주조상들은 과거 여름철이면 개역을 먹었다.
요즘 시장에서 파는 미숫가루와는 다르다.
개역은 순수 보리를 갈아만든 여름 간식거리로 나이 지긋한 분들은 이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있을 법하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보리는 겨우 내내 땅속에서 뿌리 채 지낸다.
겨울철 땅속의 음기는 흠뻑 머금는다.
극양의 계절 여름에 음기를 지닌 개역이야 말로 몸 상태를 중간으로 오게 하는 특효음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냉커피나 무슨 무슨 음료보다는 제주사람에게는 신토불이라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개역이 몸에 맞는 듯 하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 이 여름철에 우리를 열 받게 하는 일이 생겼다.
UN에서 주최하는 '정부혁신세계포럼' 개최지가 서울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당초 재보선 당시 집권 여당이 제주 개최를 약속했던 사항이다.

표를 의식한 발언으로 이해해 주기에는 APEC에 이어 마치 우리를 조롱거리로 여기는 듯 하다.

전국에서 차지하는 정치적 비중이 미미한 지역이기 때문에 적당히 구슬리다가 총선이나 대선 등 중요한 시기에 다시 다가서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분통이 터진다.
애당초 서울 개최가 불가피했다면 사실을 밝히고 이해를 구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현직 장관인 당시 전직 당의장이라는 인사가 거짓 제주개최를 약속하면서 APEC 부산개최로 화나있는 제주도민을 잠시 속이려 했다니 서글픔 마저 든다.
여기에 별 다른 이유 없이 제주의 딸 '강금실 장관'마저 경질됐다니 더위가 두 배로 느껴진다.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 더운 여름철 제주 산 보리 개역을 먹고 중심을 찾아주길 간곡히 바란다.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