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담항설(街談巷說)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거리나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라고 풀이되는 말이다. 소문은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는 “하더라” 수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 “하더라” 수준의 말 중에는 듣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하면 듣고 싶지 않는 말이 있다. 말을 들을 때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들을 수 있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이 있으랴마는 그러지를 못하니 탈이다.

  요즘은 가담항설이 수준을 넘어선 말들이 정치권이나 공직자의 입에서 쉽게 튀어나와 설화(舌禍)를 자초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라 경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느닷없이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밟고 지나간다.

경제 보다 정치가 우위에 있음인지, 민생문제나 실업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다가도 정치이야기만 나오면 뜨겁게 달궈지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조사할 테면 해봐라” 이 말은 야당 대표가 한 말이다. 친일 진상규명법 개정안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사 범위에 포함시킨데 대한 불편한 심기를 노정한 듯한 발언이다. 아무리 심기가 불편해도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는데 “툭 치니까, 억 하더라”는 식으로 받아치는 것은 첨예한 대립 각을 표출하는 것이다.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던 목소리가 아직은 귀에 쟁쟁한데 서로가 감정을 앞세우고 있는 게 우리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다보니 협박적이고 공갈성이 다분히 내포된 말들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온다. 이런 말을 들을 때는 실제로 한방 얻어맞은 듯한 물리적 통증을 느끼게 된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계급장 떼고”, 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왜, 계급장을 떼고 말해야 되는 것일까. 계급장을 떼고 말하자는 것은 피아간에 최후의 선택이다. 일전을 불사할 각오가 섰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다. “내 목을 치겠다고” 하는 섬뜩한 말도 있었다. 이 말에 대한 대응도 감정을 앞세운 가시 돛인 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하지만 말을 할 때는 자신의 인격과 신념을 담보로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4?15 총선 막바지에 불거져 나온 노인폄하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그 말 한마디가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켰던 것을 아직은 기억하고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막말하듯이 하는 말, 그것은 감정의 발로일 뿐  듣고 싶은 말이 아니다. 그러기에 말을 하는 시간 보다 사유하는 시간이 더 길어야 한다고 했다.

예전에 대목(大木)이라 불리는 큰 목수들은 대패질을 하는 시간 보다 대팻날을 가는데 시간을 더 할애했다는 말이 있다. 말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팻날 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잘 다듬어지고 걸러진 말은 듣고 싶은 말이 되어 오래도록 세인의 기억에 남는다.

  이제 우리는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 식으로 하고 싶은 말을 못해서 가슴조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침묵을 강요받던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은 격세지감으로 받아드릴 수도 있는 일이지만…. 불볕더위에 듣고 싶지 않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것, 그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말을 다듬고 가려하는 지혜가 아쉬운 때다. 

수필가  조   정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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