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는 내리고 값은 올리고, 이 말은 수수께끼가 아니다. 그렇다고 스무고개도 아니다. 우리와 벗하며 애환을 달래고 아등바등 서민들과 아우러져 톱니바퀴를 맞물려 돌려온 이 땅의 소주 이야기다. 우리가 지금의 희석 식 소주에 맛 드리기 시작할 때, 아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25도였다. 그 25도를 우리는 소주의 기본 도수인 줄 알고 오랜 세월 잘도 마셔왔다.

   그런데 그 소주가 야금야금 도수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도수를 내리는 것까지야 애주가들의 건강을 위해서 라고 한다면 더할 말이 없겠지만 소주의 몸값은 왜, 올리는 것일까. 그것도 애주가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서인지 야금 야금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살짝살짝 올린다. 양을 줄이고 도수는 내리고 그러면서 가격은 올리는 것, 이것은 아리송한 물가 논리다.

  이 땅에 소주가 뿌리를 내린 것은 몽고군이 말 타고 들어오면서부터 라는 말을 설득력 있게 받아드린다. 그렇게 보면 꽤나 오래된 세월이다. 이렇게 소주는 우리와 역사를 같이해 왔다. 옛날의 소주는 지금처럼 희석식이 아닌 증류식 소주였을 터이지만 어찌하든 소주는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해 왔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술과 인간관계를 풍자한 말들이 심심찮게 회자된다. 그 중 하나가 옛 소련이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었을 때 지금의 ‘러시아’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 영하 40도가 아니면 추위가 아니고 알코올 도수가 40도가 넘지 않으면 술이 아니라는 ‘러시아’에서 술을 사기 위하여 늘어선 행렬과 또 하나의 장사진이 이어졌다.

술을 사기 위한 행렬이야 얼른 이해가 되겠지만 다른 장사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장사진은 사회주의체제에서 술을 배급 받는데 길들여진 사람들이 ‘고르바쵸프’ 때문에 돈을 내고 술을 사야하고, 그것도 돈이 많은 사람은 많이 사고 돈이 없는 사람은 술을 구경도 못하게 되었으니 술을 사는 것 보다 ‘고르바쵸프’를 먼저 죽이러 가자고 모여든 행렬이었다고 한다.

영하 40도가 넘는 추위에 알코올 도수 40도가 넘는 ‘보드카’를 사기위하여 줄을 서야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얼마나 자유경제체제가 원망스러웠으면 이런 풍자를 했을까.
   ‘러시아’ 사람들의 눈에 돈만 있으면 줄을 서지 않아도 양껏 술을 살 수 있는 나라 ‘코리아’는 참말로 살기 좋은 나라로 비쳐질 것이다. 소주 값이 올라가도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소주를 마셔온 서민들은 왜, 소주 값을 올리는지에 대한 해명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그저 값을 올려놓고 판을 벌리고 있으면, 덩달아 소비량이 늘어만 가니 이 장사야말로 땅 집고 헤엄치기다. 그러다보니 소주가 서민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는 소주 값이 올라가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데 이골이 나 있다. 나라가 거덜 났다고 아우성치던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도 소주 값은 올라만 갔고 더불어 소비량도 늘어만 갔다.

이것이 우리와 소주와의 묵시적 정서다. 양이 줄어들고 도수는  내려가는데, 값은 올라가고 있다. 양이 줄어들었으면 그 몫으로 값을 조금 내리고 도수를 내렸으니 그 몫으로도 가격이 내려가야 하는 게 상식적인 물가 구도인줄 알고 있었는데, 오히려 값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아이러니’의 극치다.

수필가  조   정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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