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 조국의 연둣빛 산하에 눈 부신 햇살이 가득합니다. 유월이 오면 내면의 깊은 곳에 각인된 처참했던 동족상잔의 역사가 불현듯 반추 되는 것은 어찌 나만의 사유는 아니겠지요. 긴장이 드리워진 적막한 155마일 휴전선, 녹슨 철조망을 무심히 넘나드는 텃새무리는 이 땅에 처참했던 상잔의 비극을 아는지. 분단의 아픔에도 초연한 한라산 영봉의 위엄스런 태고적 자태는 유유(悠悠)하고, 조국의 산하는 푸르기만 합니다. 순국선열과 전몰 호국용사의 충절을 추모하며, 충정어린 심정으로 깊은 상념에 잠깁니다. 우리 조국의 근대사는 숱한 도전과 응전으로 얼룩진 수난의 역사였습니다. 한일병합으로 나라를 침탈당하고, 월남전쟁에 참전용사가 목숨을 바쳤으며, 처참한 동족상잔의 비극 6.25가 있었습니다. 현대사에는 불의의 독재에 항거한 민중항쟁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는 순국선열과 전몰 호국용사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으며, 자유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피를 흘린 국가유공자의 빛나는 공훈이 있었습니다. 초토화되었던 산하에 만물은 회생하고 미완의 평화가 깃들어 있지만, 희열을 잊은 유족들의 비탄(悲歎)의 눈물은 마르지 않습니다. 순국선열의 숭고한 얼이 깃든 역사의 땅 위에 통한의 세월을 사는 유족들의 소리 없는 절규가 가득합니다. 생명의 소중함에 앞선 임들의 애국충정과 빛나는 공훈은 후세의 가슴속에 영원히 각인되었습니다. 임들의 거룩한 희생과 빛나는 공훈의 초석 위에, 오늘날 자유와 평등이 인간의 존엄으로 점철되는 자유민주주의가 꽃피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단된 조국에 불안한 평화는 지속되고 있으나 안보의 위험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적대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단의 현실에 투철한 안보관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근간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국가안위를 직시하지 못하고 상궤(常軌)를 일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호의호식만을 위해 병역을 면탈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순국선열의 거룩한 넋을 경멸(輕蔑)하고 유족들의 시린 가슴을 더욱 멍들게 하며,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게 합니다. 임에 대한 추앙의 보훈문화는 의례적이고 형식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가. 인고의 세월을 사는 유족들에게 곡진(曲盡)한 보은은 있는가. 다시 한번 되새겨보아야 할 일입니다. 호국보훈문화가 일상의 고귀한 가치로 뿌리내려, 사회적 연대와 국민적 공감대로 애국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임들의 거룩한 희생과 빛나는 공훈에 보은하는 길이며, 유족들의 시린 가슴을 보듬어주는 일입니다. 초여름 햇볕이 따사로운 유월 호국보훈의 달. 투영되는 전몰 호국영령의 영전에 고개 숙여 추념하며, 진정한 추앙의 보훈문화가 일상에 뿌리내리는 밝은 사회를 그려봅니다.

문   익   순
제주특별자치도 공보관실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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