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역사’논쟁이 한창이다. 정부의 과거사 규명 방침, 여기에 곁들여 집권여당의 당의장이 사퇴하는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특히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우리를 분노케 하고있다. 남의 나라 역사를 제멋대로 자기들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행위는, 그 의도가 어디 있든 간에 단죄(斷罪)해 마땅하다.

 이에 대해서는 자성(自省)의 목소리도 높다.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필수과목 ‘국사’라는 말은 이미 옛날 얘기가 된지 오래이다. 대학 교양과정에서도 구정권(舊政權)의 국책(國策)과목이었다는 이유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음을 본다. 일부 ‘시험’에서 국사를 출제하고는 있으나, 수험생들은 이를 암기과목 정도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자기나라 역사를 알지 못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실로 답답할 노릇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역사에서 얻을 것이 없으면 버릴 것이라도 배워야 한다. 굴욕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가 분명하기에, 잘못된 점을 깨닫고 그런 전철(前轍)을 밟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는 29일은 국치일(國恥日)이다. 94년전인 1910년 이날, 우리는 일본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만다. 이른바 ‘한일합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22일 순종황제가 임석(臨席)한 가운데 형식적인 어전회의를 거쳐 합병조인을 완료하였으나, 이리저리 눈치를 보면서 일주일 동안 미루어오다 29일에 발표를 한 것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이날을 특별히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듯 싶다. 건망증 때문이 아니라, 무지(無知)와 무관심 탓이리라. 3.1절이나 8.15는 국경일로 지정돼 각종 기념행사를 하고있어 잊지 않을 수 있지만, 국치일은 생각하기조차 부끄러운 날이기에 그냥 넘어가 버리기 일쑤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날을 더욱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는 이런 치욕적인 일이 없어야 하기 까닭이다. 미국인들은 일본이 노골적으로 경제진출을 꾀할 때 ‘진주만을 잊지 말자’는 2차세계대전 당시의 구호를 상기하며 일본을 경계하였다.


 인간이기에 망각(忘却)이 없을 수 없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역사, 그것도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했던 중대사는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된다. 아팠던 과거를 망각해버리는 것은 결과적으로 더욱 큰 불행을 자초하게 되기에 그러하다.

 차제에 한일합방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말았으면 한다. 일본은 자신들이 병탄(倂呑)하였다고 하여 이날을 ‘일한합방’이라거나 ‘한국병합’ ‘조선병합’이라고 부르고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국권을 강탈당한 ‘8.29국치일’ 또는 ‘경술(庚戌)국캄라고 썼으면 어떨까. 그래서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았으면 한다.

 일본이 당당한 주권국가인 우리나라를 한낱 씨족·변방국으로 비하시키기 위하여 지어낸, 이조(李朝)·이씨조선이라는 국호도 쓰지 말자. 일제 ‘36년’도 틀린 표현이다. 만 35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을 1년이나 더 늘이는 꼴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해방이라는 말도 광복으로 통일했으면 한다. 해방(解放)은 남의 힘에 의해 풀림을 당했다는 피동적인 뜻이 강하다. 8.15를 ‘광복(光復)’절이라고 명명한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광복 59년. 대한민국 건국 56년. 이제 일본은 과학·기술·경제·문화 등으로 또다시 우리나라를 기웃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신을 차려야 한다. 과거를 거울삼아 보다 나은 현재와 보다 밝은 미래를 창출해야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역사를 배워야 한다. 배울 것이 없으면 버릴 것이라도 배워야 한다.

제주산업정보대학장 이  용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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