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태풍 ‘나리’는 중급강도의 소형급 태풍이라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주는 유난히 풍파에 강한 곳이었기에 이번 태풍내습 소식에도 그리 긴장하거나 대비에 분주해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내 아내는 태풍소식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침 일찍 표선지역까지 하우스귤을 따러 나갔다.

그러나 태풍의 기운이 제주를 감돌수록 나의 생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느꼈다.

우리 금감하우스는 모두 전파됐고 감귤하우스는 비닐이 찢기고 날라가고, 파이프가 휘어지고...내 아내는 귤을 따다가 비닐이 다 날라가는 바람에 비에 홀딱 젖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TV속에 비춰진 제주의 피해모습에 또 한번 놀랐다. 내 피해에 대한 절망감보다는 오히려 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모두 무사함에 안도와 감사함을 느껴야 했다.

제주시 도심 곳곳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침수된 가옥, 떠내려가는 차량들, 파손된 도로...

많은 재산피해와 소중한 13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등 제주에 사상초유의 피해를 입힌 태풍 ‘나리’의 위력에 놀란 뒤에야 내 피해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막막해 할 때 우리들에게 손을 내밀어 ‘희망’의 씨앗을 심어준 사람들이 군 장병들이었다. 전국의 군장병들이 지난달 18일부터 우리를 돕겠다며 제주로 몰려들었고 공무원,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휴일을 반납한 채 연일 피해 복구작업을 벌였다.

우리도 27일부터 너댓 명의 군 장병들의 도움을 받아 하우스 복구작업을 시작했다. 바닥에 누워버린 파이프를 들어올리고 비닐등을 나르는 등 장병들은 자신들의 젊음을 뽐내는 냥 열심히 며칠동안 우리의 일을 도왔다. 이들 덕택에 태풍피해로 막막했던 상황이 조금씩 정리되어가기 시작했다.

군장병 등 자원봉사자들이 도민과 함께 해준 약 보름동안 도심지 곳곳에서도 많은 응급복구들이 이뤄져 동문 재래시장도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고 쓰레기더미로 가득했던 도로도 깨끗이 정돈되는 등 빠르게 예전의 제주 모습을 찾아갔다.

응급복구는 마무리 되었지만 사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하지만 우리 수해민들이 절망속에서 희망을 되찾을 수 있도록 아픔을 함께 업고 일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 장본인은 이들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자연재난에 너무 무관심했던 내 자신을 반성해 보면서 이 자리를 빌어 새로운 삶의 희망을 심어준 군 장병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 이번 태풍피해 복구하느라 폭삭 속아수다. 그리고 도와줘서 정말 고맙수다,예!”

김   한   주
서귀포시 동홍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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