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남긴 최악의 쓰레기

17대 총선이 남긴 최악의 쓰레기는 무엇인가. ‘세대간 갈등과 분열’이다. 그래서 거기서 풍겨나는 ‘세대 교체’의 담론은 역겹고 지저분하다.

60대 이상 노년층은 투표를 하지 않아도 좋을 세대 정도로 폄훼(貶毁)하는 발언이 촉발시킨 것이다.

그것은 피땀 흘려 오늘을 이룩한 부모세대에 대한 패륜이며 배은망덕이다.
누구든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게 마련이다.
오늘의 늙음이 과거의 젊음이었듯이 언제나 청춘일 것 같은 오늘의 젊음은 내일의 늙음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년층을 부정하는 것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자기의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며 자기의 미래를 부정하는 짓이다.

그렇지 않아도 60대 이상 노년층의 사회적.정치적 상실감은 커지고 있다. 젊은 세대와의 단절감까지 겹쳐 더 큰 소외감을 맛보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은 노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모아져야 할 때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년세대를 시대적.사회적 퇴출 대상으로 삼으려는 발상은 현대판 고려장을 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물론 세대간 갈등은 언제나 있어 왔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아젠다나 다름없다.

사실이 그렇더라도 이것이 정략적 목적 달성의 도구로 악용되어선 아니 된다. 아무리 사정이 절박해도 그렇다. 그래서 지혜를 모아 극복할 대상이지 편을 갈라 제거해야 할 상대일 수는 없다.

지금은 세대 통합으로 갈 때

따라서 ‘무조건적 세대교체 담론’은 위험하다. 그건 정말 건방지고 분별없는 말싸움에 불과하다.

지금은 세대교체 담론으로 사회를 분열시킬 때가 아니다.
오히려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노년의 지혜와 분별력을, 젊음에서 용솟음치는 열정과 패기와 함께 엮어 나가야 할 때다. 그래서 세대통합을 통해 미래를 역동적으로 추동해 나가야 한다.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인정한다해도 그렇다.
단지 나이가 젊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주류에 무임승차하려는 것은 곤란하다.
부단한 자기 연마와 사회에 대한 공적 기여를 통해 사회 일반의 검증절차를 밟는 것이 먼저다.

누가 얼마만큼 사회저변의 염원을 미래 비전으로 집약시켜 사회를 이끌어 갈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 연후에 일반의 지지와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세대교체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대간 갈등구조를 확산시키며 담론의 왜곡만 부채질한 ‘노인 폄훼 발언’은 가증스런 시대의 반역에 다름 아니다.

“목적을 위해 사회적 집단발작을 부추긴 비열한 정치적 술수’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용서의 깃발 올려야 한다

경계성 인격장애(Borderline per sonality)라는 용어가 있다. 인격장애 증상의 하나다. 정신의학에서 나오는 말이다.

대인관계가 불안정하여 쉽게 분노하고 분열주의에다 이분법적 흑백논리 사고를 가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최근 우리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 이와 비슷하다. 오히려 중증 현상이다.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는 짓거리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다.

사회전반이 악몽처럼 가위누르는 갈등과 분열의 블랙홀에 빨려들고 있다.
지역간.세대간.계층간.언론간.여야간 등 숨쉬는 사회집단은 모두 패거리지어 편가르기에 몰입돼 있다.
모두가 네 편 아니면 내편, 적 아니면 동지로 갈려 상대를 말살하려는 증오의 이빨을 갈고 있다.

이같은 갈등과 분열과 증오의 중심에는 언제나 정치권이 자리잡는다. 정치꾼들이 앞장서 편가르기 깃발을 흔들고 있다.

이번 노인 폄훼 발언으로 세대간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패게 한 쪽도 정치권이며 정치인이었다.

가뜩이나 고단한 노년층을 끌어내려 얻으려는 것은 고약한 정치적 야욕일 뿐이다.
이제는 이같은 야만의 욕심을 버려야 할 때다. 그래서 용서를 비는 깃발을 올리고 겸손의 묵상을 시작해야 한다.

“니들도 내 나이 돼봐”.
아직까지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 노년의 반응은 시니컬 하다. 이들의 노여움을 달래야 할 때다.

그것이 17대 총선이 남기고 간 악취 풍기는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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