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목민심서(1992, 황인경 저)”에는 흑산도(黑山島)의 우이봉에 올라가면 한라산이 보이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흑산도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의 형인 손암 정약전(丁若銓, 1758~1816) 선생이 신유사옥(辛酉邪獄, 1801년)의 희생양으로 15년간 유배되어 돌아가실 때까지 인생의 황금기를 소진해야만 했던 곳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손암 선생님은 무기력하게 하늘이나 쳐다보며 세월만 한탄하진 않았다. 

매일 우이봉에 올라 한라산과 구름, 바람의 방향과 속도, 온도와 습도 등을 관찰하여 기상을 정확하게 예보하기도 하고, 섬 주위를 돌아가는 해류의 흐름과 생태, 어류 분포를 면밀하게 파악하여 어민들을 일깨우면서 산업 발전에 지대하게 공헌하였다고 전해진다.

실학에 바탕을 둔 대학자적인 자존심을 정열로 불태우며, 시대를 잘못만난 불행한 천재는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의 어류 도감이라고 불려지는 “자산어보(玆山魚譜, 현산어보라고도 한다.)”를 남기게 된다.

이 책에는 155종의 각종 해양 생물들의 명칭, 분포, 습성 등에 대한 매우 방대한 사실을 담고 있으며 청어와 고등어의 회유(回遊)에 대한 연구는 현대 의 어류학자들이 감탄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밤을 세워가며 연구를 거듭하기를 꼬박 15년, 어부들은 양반이 고기를 해부하고 생태계를 관찰하는 것을 보니까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해대기도 하였지만 나중에는 소흑산도와 대흑산도의 주민들이 서로 모셔가려고 다투기도 하는 등 존경을 한 몸에 받기에 이르렀다. 

잘 갖추어진 첨단 장비를 활용하는 것도 아니고, 맨손과 붓, 그리고 집요한 관찰력으로 이루어낸 성과이며, 유명한 프랑스 파브르의 “곤충기”가 나오기 60여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외에도 수많은 책을 저술하였지만, 돌아가신 후에 어떤 무지랭이가 귀한 자료들을 모두 방의 벽지로 발라버렸는데, 현재 전해지는 자산어보는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유품을 거두려고 흑산도에 갔다가 벽지로 발라버려 진 것을 발견하여 한 장씩 떼어내면서 필사(筆寫) 해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손암 선생님은 힘이 부치고 눈이 멀어질 때까지,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아들(현지에서 재혼하여 얻은 아들)의 등에 업혀 우이봉에 오르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한라산에 눈길을 주셨는데, 우리 도의 다양하고 풍부한 생물종(육상 식물 1,800여종과 동물 3,669종, 해상 식물 522종과 동물 1,224종)을 산업 발전에 이어지게 하려는 관심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우이봉과 백록담을 오가면서 최근에 제주에서 생태계를 이용한 과학적 성취를 크게 기뻐하시고 많은 가르침을 주시리라 믿는다.

주변에서도 어려운 여건에서 과학을 기반으로 미래의 지식산업을 열어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인재들에게 격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조   시   중
제주특별자치도 인력개발원 사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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