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군 동부지역 수해현장은 지금…

무더웠던 한여름을 보내고 민족 고유의 최대 명절 한가위가 찾아왔어도 동부지역 수재민들에게는 결코 반갑지만은 않다.
지난 11일·12일 동부지역을 할퀴고 간 수마의 악몽이 여태껏 남아있기 때문이다.
북제주군 조천읍 조천리 김순환 할머니(63).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땅이 꺼져라 한숨부터 쉰다.

코앞으로 추석이 다가왔어도 제수용품 준비는커녕 찾아올 친지들을 어떻게 맞아야 할 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실내는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하고 실내바닥은 장판을 걷어내 발을 붙일 수가 없었다.

햇빛이 드리운 마당 한 귀퉁이에는 빛 바랜 할아버지와 아들의 옛 모습이 담긴 앨범이 다소곳이 널려져 있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반평생을 같이 했던 할아버지에 대한 김 할머니의 애틋함이 묻어났다.
김 할머니는 꼬박 열흘째 울음을 삼키며 흙탕물에 잠겼던 집안을 치워나가고 있지만 줄지 않는 세간 정리에 분통이 터지고 이젠 서러워 눈물까지 난다.

"할아버지 먼저 보내고 아들하고 살고 있는데 아들 출근하면 혼자 해야지 별 수 있나? 근래 신경을 너무 썼는지 아픈 다리가 더 아파서 이젠 더는 못 하겠수다."
흙으로 범벅이 된 걸레만 애꿎게 방망이질 해댔다.
"아이고∼ 누구네는 이부자리다, 라면이다 지원됐다는데 백 없고 돈도 없는 나는 비누 한 장 없습니다."

김 할머니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지는 지 서글픔에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김 할머니는 "올해만 3번이나 가전제품이 물위를 둥둥 떠다니고 잘 곳 없어 속이 시커멓게 탈 때 공무원 누구 하나 안보였다"며 "나라님들이 어려운 사람들을 허리 굽혀 보살펴 줘야지 누굴 믿고 살라는 거냐"고 하소연했다.

김 할머니는 품을 팔아 하루하루 일당으로 살림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간 복구작업을 하느라 일도 못한 상태여서 몇 천 원하는 장보기에도 더럭 겁이 난다.
되레 추석이 원망스러워 "지금 추석이 문제가 아닙주,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살아갈 희망이 없다"며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이지 조상 모시는 것보다 내 이부자리 하나 펼 곳 되돌려 놓는 게 더 중요하지 않느냐"며 원망 섞인 푸념만을 늘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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