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것이 강(强)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은(剛)것을 이긴다(弱之勝强 柔之勝剛)’.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글이다. 이에 더하여 노자는 ‘가장 좋은 것(善)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였다. 물은 이 세상에서 제일 유약(柔弱)한 것이지만, 그러나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데는 물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도덕경에서 ‘물’은 도(道)의 최고 상징이다. 우선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생명의 근원이다. 그 무엇도 물이 없으면 삶을 지탱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물을 생명수라고 하는 것이다.

물은 우리에게 묻은 때(垢)를 씻어 정결(淨潔)하게 해준다. 이는 남의 잘못을 대신 떠맡는다는 뜻도 된다. 물은 걸레를 빨 때 더러움을 나무라거나 정죄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수용한다. 이처럼 물은 온갖 허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이 세상을 깨끗하게 한다.

그렇지만 물의 특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노자는 또 다른 차원에서 물의 특징을 찾는다. 즉 ‘물은 아무와도 다투지 아니할(不爭)뿐만 아니라, 남들이 싫어하는 곳(衆人之所惡)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물은 모든 것을 이롭게 하면서도, 결코 그 공로를 인정받으려 하거나 군림하려하지 아니한다. 그저 묵묵히 섬기는 일을 한다. 모두가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고 안달을 부리지만, 물은 그저 자기를 낮추면서 오로지 낮은 곳을 향해 갈 뿐이다.

도대체 물은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기 주장을 고집하는 법이 없다. 네모난 그릇에 넣으면 네모나고, 둥근 그릇에 들어가면 둥근 모습을 나타낸다. 또 추우면 굳어지고(結氷) 더우면 풀어지며(解氷) 뜨거우면 날아간다(蒸發).

이러한 물이 ‘강한 것’ ‘굳센 것’을 이긴다. 물러빠지고 여리기 그지없는 물이 바위나 쇠붙이 같은 딱딱한 것을 이긴다니 이상하다. 하지만 사실이다.

바위를 뚫고 큰배를 들어 올리며 둑과 언덕을 무너뜨리는 것이 다름 아닌 물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유순한 백성이 포악한 정치 밑에서 꼼짝 못하는 것으로만 보이나, 실은 이런 국민을 이긴 정권이 없었다. 힘없는 민중이 철권을 휘두르는 정치권력을 종국에는 이기고 마는 것이다.

결국, 강한 것은 부러지기 마련이다. 군대가 강하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도 강하면 꺾이고 만다. 병세(兵勢)가 지나치게 강하면 이를 과신하고 교만해져서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나무도 장대하면 꺾이기 쉽고, 또 목수의 눈에 발견되면 잘리기 십상이다. 이와 비슷한 말은 중국 원(元)대의 장양호(張養浩)가 쓴 삼사충고(三事忠告)에도 나온다. ‘대저 강한 것을 이기려면 부드러워야 하고, 번잡한 것을 다스리려면 간편하여야 한다.’

‘강하고 큰 것은 밑에 놓이게 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놓이게 되는 법’이다. 자기를 낮춤으로써 자연히 높아지게 된다는 말이다. 유약한 것은 천성적으로 스스로를 낮추기 까닭에 위에 오르게 되고, 강대한 것은 스스로를 자랑하고 방자하기 때문에 아래로 처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다 이렇다고 할 수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 달도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게된다. 이런 주기적인 변화에 그때마다 아득바득 애를 태우면서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초연하게 세상을 멀리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무력이나 물리적인 힘으로 세상을 이길 수는 없다. 날카로운 무기는 깊은데 감추어 두었다가 꼭 필요한 방어전에서나 사용하여야지, 그것을 아무 때나 드러내놓고 과시하는 것은 패망을 자초하게 될 뿐이다. 물처럼 부드럽고 겸손한 것이 만물을 제어(制御)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제주산업정보대학장       이   용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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