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문화제는 그 동안, 제주의 특성과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성격의 축제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비판도 만만치 않다. 많은 사람들이 도민의 참여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면서, 적잖은 예산과 행정력을 투입하고도 실속 없는 집안잔치로 끝나고 있다고 불평하고 있다. 축제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루면서, 평가기준을 마련하여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사회단체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제주문화포럼은 축제가 전시 행정으로 흐르거나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평가단을 모집, 직접적인 평가를 실행하기에 이르렀다. 늦게나마 행정 당국도 축제연구지원팀을 구성하여, 지역축제의 객관적인 진단과 평가를 통한 문제점을 개선하고 효율적인 지원방안을 수립하기 시작하였다.

 축제란 도대체 무엇일까? 축제는 한마디로 맺힌 것을 풀어주는 것, 상한 자를 고쳐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다. 문제를 공동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 두레 풍장처럼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풍성한 음식이 나누어지고 술과 춤과 노래가 있는 것, 이해가 있고 정을 느낄 수 있고 본질적으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마당,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조상들 사상을 만날 수 있는 터다. 축제의 개념은 한 개인의 삶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을 넘어 집단으로 확장되는 개념이다. 자본의 질서에 충실하게 길들여진 우리로서 축제는 확실히 도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축제를 계속적으로 견지해 나가야 함이 마땅하다. 주민들의 고단한 일상과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미국의 신학자 하비 콕스는 일찍이“축제는 억압되고 간과됐던 감정 표현이 사회적으로 허용된 기회”라고 하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세 가지 본질적 요소가 있다고 하였다. 환락을 추구하는 행위의 `고의적 과잉성', 기본적으로 생을 긍정하는 자세를 필요로 하는 `축의적 긍정성', 그리고 일상생활과 판이하게 다른 상황을 보여주는 `대국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축제는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상과 대비된다는 점, 즉 일상에서의 탈피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하비 콕스는 또 중세 유럽에 있었던 '바보제'가 사회 축제적인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당시 바보제가 열리는 기간에는 귀족을 마음껏 비아냥거릴 수 있었다. 사회적인 스트레스가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거나 혁명으로 발전되지 않게 하는 사회적인 장치인 셈이다. 옛 우리 사회의 '양반전'이란 놀이도 마찬가지다.

 J. 호이징가도 인간은 호모사피엔스, 지혜있는 사람이 아니고, 호모루덴스, 노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축제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놀이가 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본디 모습 가운데 놀이가 내재돼 있음을 이해한다면 삶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놀이가 신을 향한 경건과 연결되면 예배가 되고 찬양이 된다. 놀이가 일과 연관되면 농사 축제가 되고 양털 깎는 축제가 된다. 관광산업으로 탐라문화제를 연계시키고 전통문화를 보전하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는 이상적 방향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설혹 이 부분을 충족하지 못했다 해서 축제가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김  관  후  북제주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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