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들이 화났다. 화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제주가 그토록 열망했던 APEC정상회의 개최도시를 부산에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제주가 부산에 비해 APEC정상회의개최도시 선정과 관련 객관적 비교우위에 있으면서도 부산의 ‘정치적 놀음’에 휘말려 APEC정상회의 개최도시를 뺏긴 것이다.

그동안 제주는 APEC제주유치 범도민운동본부 결성과 100만인 서명운동 등 각계각층의 도민들의 열기는 남다른 것이었다. 물론 부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명분과 타당성은 있다. 그러나 APEC정상회의가 무엇은 논하는 장인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국가들이 투자와 무역의 자유화, 경제협력과 기술교류를 논의하는 장이다.

이런 모임이 국제자유도시인 제주에서 열려야 하는 까닭은 자명했다. APEC정상회의는 EU, G7, ASEM과 같은 여타 정상회의와는 기본적으로 회의여건을 달리한다.

APEC정상회의는 기본적으로 비공식적인 ‘느슨한 포럼(Retreat)'으로 21개국 정상들이 편안한 자리에서 공동관심사를 논의하는 장이다.

때문에 여타 정상회의 개최지 역시 대도시를 벗어난 한적한 리조트 휴양지에서 대부분 열렸다.

인도네시아의 보고르, 필리핀의 수빅, 멕시코의 로스카보스 개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점에서 제주는 충분히 준비된 공간이었다. 이는 부산과의 객관적 비교에서도 충분히 드러난 것이었다.

제주도는 ‘2005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 선정을 위한 ‘APEC 개최도시선정위원회’의 △회의시설 △숙박시설 △공항 시설 △현장교통 및 경호 △문화관광 △회의개최능력 △자치단체 협조 △국가 및 지방발전 기여도 등 8개 항목별 비교 평가결과 자치단체협조와 국가 및 지방발전기여도 등 주관적해석이 있을 수 있는 2개 항목을 빼고는 모든 항목에서 부산보다 비교우위에 있었다.

특히 정상들의 경호상 안전문제는 개최도시 선정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항목이었다.
제주는 ‘91년 한소정상회담을 비롯 ’96년 한미, 한일정상회담 등 11개국 14명의 외국정상들이 방문한 곳이다.

특히 2001, 2003 제주평화포럼을 통해 평화의 섬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한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올해 3월 UNEP, 4월 PATA에 이어 5월 ADB총회 등 굵직한 세계회의는 이미 APEC정상회의 개최도시 선정의 연결고리였음을 증명해 준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제주를 거부할 명분은 없었다. 이를 부산이 정치적 논리를 통한 뒤집기 시도끝에 APEC을 도둑질해간 것이다.

그 사례는 충분하다. 부산지역 출신 국회의원 22명은 APEC 정상회의 개최도시를 유치하기 위해 여야를 막론, 외교통상부와 관계부처 등 중앙정치권에 압력을 놓았다.

부산시의 협공작전도 가해졌다. 부산시는 지난 19일 시장권한대행이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관계자, APEC 개최도시 선정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 이어 20일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자 10여명이 선정위원회가 열리는 외교통상부를 찾아 압력을 행사했다.

특히 열린우리당 정동영의장이 22일 김혁규, 조성래, 조경태 등 부산 경남지역 출신 국회의원들과 자리를 마련, APEC 정상회의 부산유치문제를 놓고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져 APEC개최도시 선정은 제주의 비교우위에도 불구, 긴박한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

이는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한나라당에 참패함에 따라 여당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신들의 입지를 과시, 부산시민 달래기 치원에서 이뤄진 정치적 놀음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이 같은 여야 국회의원의 외교부, APEC개최도시 선정위원과 청와대 등에 대한 압력으로 APEC 개최도시 선정위 회의가 26일로 연기됐고 급기야 부산으로 선정된 것이다.

여기에는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맞물리면서 정부와 여야가 할 것없이 부산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역사의 오점을 남기는 우를 저지르는 결과를 낳았다.

APEC개최도시 결정은 정부의 소관이다. APEC개최도시 선정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정부의 공식기구인 35인 준비위원회가 최종결정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모두 부산의 정치적 놀음에 휘말려 최선의 선택을 포기하고 차선을 선택한 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우를 범한 사실에 도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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