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15’ 세계 7대 자연경관 전화투표(001-1588-7715)의 ‘제주’ 고유 번호다.

며칠 전 제주시 A동주민센터를 방문했을 때 목격한 장면이다. 맨 앞 창구에 앉아 있던 한 공무원이 민원인을 응대하던 중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전화기에서 ‘삐~’ 소리가 나자마자 익숙한 듯 ‘7715’를 눌렀다. 그리곤 다시 재발신 다이얼에 손을 갖다 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민원인이 “세계 7대 자연경관에 투표하시는 것 같네요”라고 묻자 이 공무원은 당황한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머쓱한 표정만 지었다.

전화기 옆에는 놓인 A4 용지에는 ‘正(정)’자가 나란히 표기돼 있었다. 매번 전화투표를 할 때마다 한 획씩 그려나간 것이다. 어림잡아 400번은 전화투표를 한 듯 했다.

‘업무 시간에, 그 것도 민원인을 응대하는 도중에 꼭 투표에 참여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위 사례를 언급한 것은 이 공무원의 잘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이러한 장면은 요즘 도내 읍.면사무소나 동주민센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문제는 제주도가 스위스의 비영리재단인 ‘뉴세븐원더스(The New7Wonder)' 재단이 주관하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투표에 공무원을 너무 무리하게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 산하 공무원의 전화투표 실적만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다.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제주도 47만9000건, 제주시 154만4000건, 서귀포시 185만3000건 등 387만여건을 기록했다.

제주도와 행정시 공무원 수가 4577명인 점을 감안하면 공무원 한 명당 679건의 전화투표를 한 셈이다. 지난달 제주도와 행정시가 부담한 전화투표 요금만 1억1600만원에 달한다. 이 돈은 물론 ‘혈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무원들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투표참여 실적을 부서 성과관리평가 항목에 포함시켜 부서간 경쟁을 유발하는 바람에 평소 근무시간에도 투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때문에 업무에 지장을 받는 것은 물론 정해진 목표량을 채워하는 압박감에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도민과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 진행돼 할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운동이 관 주도의 ‘묻지마’식 동원 투표 양상으로 흐르면서 도전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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