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스테판 에셀 저, 임희근 역, 돌베개>라는 신간을 며칠 전에 읽었다.
출간 7개월 만에 200만 부를 돌파하며, 프랑스 사회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레지스탕스 운동가이고 전직외교관이다. 프랑스 사회의 인권과 환경정책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사회운동가다.
저자는 2009년 ‘레지스탕스의 발언’ 연례 모임에서 “젊은이들에게 ‘분노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즉흥 연설을 했고, 그 자리에 있던 출판편집자들이 깊은 감명을 받아 책을 출간했다. 표지 까지 34페이지다.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프랑스가 처한 여러 가지 문제에 ‘분노하라’고 일갈한다. 무관심이야 말로 최악의 도태이며, 인권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뜨겁게 호소한다.
이 책의 내용은 프랑스 국민에게 분노하라고 일갈하는 것과 요즘 우리나라정치의 심벌마크(Symbol mark)인 공정사회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지만, 공권력부패 등으로 국민은 분노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색갈이다.  물론 한국과 프랑스는 다르다. 이 책의 주장과 같이 프랑스가 과거에 구축해 놓았던 위상이 갈수록 추락하면서 물질적, 정신적 토대가 무너지는 것이 프랑스의 문제라면, 한국의 문제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불거진 부작용과 후유증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분노로 사회가 들끓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분노하라”는 주제가 우리 지금 사회이슈와 잘 맞아 떨어지는 테마 다.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오고, 청년실업과 양극화 현상 속에 공정사회가 화두로 등장한 우리의 현실이 이 책의 테마와 부합하는 측면이 있는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그래서 이 책에서 주장하는 분노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처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다. 고위공직후보자 국회청문회에서  자주 질문하는 정치인들의 말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보다 편법과 부정을 저지르는 사람이 더 잘사는 사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겐 가혹하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에겐 관대한 고무줄 같은 법집행을 지금정치권에서는 “살아있는 권력에는 관대하고 죽은 권력에는 추상같다”고 말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어는  대통령님은 후보시절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주장해서 큰 인기를 누렸다는 것은 지금 우리사회장년층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점점 벌어지기만 하는 사회. 경제적 격차, 자기만을 생각하는 가진 자들의 끝없는 탐욕, 도덕적 해이를 넘어 불법과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저축은행의 사태는 국민의 80%인 중산서민층들의 가슴에 못을 박고, 분노의 불에 휘발유를 붙이는 꼴이 되고 있다.
불에 휘발유를 뿌리면 불길의 화염에 휩싸여 분노가 의분(義憤)되고, 공분(公憤)이 된다.  다음은 폭발이다.
이것은 국내외 역사가 기록으로 말하고 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이 이런 연유다. 자연불균형의 극치는 화산이나, 지진이나, 홍수로 조정되지만, 인문불균형의 극치는 민심의 분노로 조정하기 마련이다.
사회적 분노를 공론화하고 의제화(agenda) 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고, 그 해법을 찾는 것은 공권력의 역할이다. 이 두 부문에서 제 역할을 못하거나, 신뢰를 잃으면  천심의 분노는 다른 배출구를 찾을 수뿐이 없는 것이다.
지금은 세계는 하나다. 타국민의 분노를 세계인들은 같이한다.
수많은 대안매체의 등장과 SNS(Social Networking Service)를 통한 활발한 의사소통은 세계가 하나가 되고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아랍권의 민주혁명도 SNS가 큰 힘의 되고 있다. 리비아 사태의 처음 시작은 극빈층의 리비아 한 젊은이가 스마트 폰 트위터에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말한 것에서 부터 발단은 시작된 것이다. 이 리비아의 한 젊은이도 트위터를 통해 권력과 부(富)에 분노로 저항 한 것이 아랍권민주혁명의 시작이다.
저자가 말하는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라고 말한다.  “내가 할 수 있겠어, 내 앞 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 ” 이렇게 말하는 것은 분노 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폭력은 안 된다고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비폭력적으로 참여해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SNS같은 네트워크를 활용하든, 시민운동에 참여하든, 선거에 투표로 심판을 하든 오르지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참여를 통해서 문제 해결에 접근하며 산전수전을 다 꺾으면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저자의 결론은 맞는데, 주장은  “이상(理想)”일 수도 있다. “노동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확보할 수 없는 모든 시민에게 생존방도를 확실히 보장 해주는 사회 보장제도, 늙고 병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잘 살 수 있는 퇴직 연금 제도, 등은 법조문으로는 가능하지만 보통사람들의 사는 현실 사회에서는 100% 달성하기가 불가능한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충돌의 중간 지점에서 부자들부터 성의를 조금만 보인다면 분노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수필가 김 찬 집

저작권자 © 제주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