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윳병을 들고 아장거리며 걷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조카녀석이 어느 틈에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녀석의 집과 학교가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서너 번 건너야 하는 찻길이 위험해 동생부부가 번갈아 가며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데려오고 한단다.

“언제까지 그럴 건데?”
“아이가 길에 익숙해질 때까지 해야죠, 뭐. 사실 아이는 혼자 다닐 수 있다는데 우리 마음이 안 놓이니….”
부모의 불안에 아랑곳 않고 녀석은 신나게 학교를 오가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가는 모양이었다.

늘 명랑한 녀석이 엊그제는 침통한 표정으로 학교에서 돌아왔다.
“쟤 왜 저러니?”
“그럴 만 한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날 녀석은 ‘도우미’였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로 치자면 ‘당번’인 셈인데, 한 반에 네 명 정도가 돌아가며 그 역할을 맡아서 반 친구들 우유도 나눠주고 수업이 끝난 다음 남아서 정리도 하는 모양이었다.

학교 밖에는 동생네처럼 아이를 데리러 온 어른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처음에 동생은 그들도 자신처럼 학부모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대부분 학원관계자들이더란다. 학교수업이 끝날 즈음 학교 근처에서 북적거리는 학원차량들을 볼 수 있는데, 바로 그 차의 운전기사거나 학원선생님들인 것이다.

그날, 그 가운데 한 명이 자꾸 시계를 보며 “왜 이렇게 안 나와?” 하더니 교실 안으로 들어가더란다. 그리고 아이 한 명을 데리고 나와 학원 차에 태우고 가버리더란다.

여느 때보다 늦게 나오는 아이가 걱정되어 동생도 교실로 가보았더니 조카녀석이 ‘도우미’를 하느라 뒷정리를 하고 있더란다. 녀석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고 여겼는데 제 아빠를 보더니 “으앙∼” 울음을 터뜨리고 말더란다. 네 명의 도우미 가운데 두 명을 학원에서 온 사람이 ‘정해진 학원 시간’ 때문에 데리고 가버려 조카녀석과 여자아이 두 명만 남아 교실정리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녀석은 억울했던 것이다. 제 아빠도 밖에서 기다리는데 자기는 보내주지 않은 것도 그렇고, 미리 가버린 아이들 몫까지 당연한 듯 맡아야 하는 상황도 이해가 안 되고…. 조카녀석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자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깜짝 놀라 “내가 안 그랬어요.”하는 바람에 동생은 교실 안에 있던 담임선생님과 함께 한바탕 웃었지만 영 개운하질 않더란다. 별 상황이 아니라고 가볍게 넘겨버릴 수가 없더란다.

가뜩이나 비좁고 복잡한 학교 앞 도로를 차지한 학원차량들(그날 특별히 세어보았더니 자기가 있었던 시간에만 열다섯 대가 세워져 있다 가더란다)의 행렬도 썩 좋은 풍경이 아니고, 아이들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교 앞에 좌판을 벌이고 아이들에게 ‘사탕’을 줘가며 주소며 전화번호를 받아 적어가는 각종 학습지 마케팅 풍경도 영 마음에 들지 않던 판에, 학원시간에 맞춰지는 학교시간을 보고 말았고, 그것을 통해 ‘공교육보다 힘이 센 사교육’의 현실을 새삼 실감해야 했던 것이다.

조카녀석은 담임선생님에게 사과를 받아내고 울음은 그쳤다는데, 자기가 왜 학원에 가느라 빠진 친구들 몫까지 해야 하는지는 이해 못하는 눈치였다.
동생은 괜히 나한테 “아이한테 뭐라고 설명해야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게 말이다.

“조카야, 억울하면 너도 학원 다녀라? 힘든 일도 아닌데 친구 몫까지 좀 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우리나라 교육열의 부작용이니 참아라? 교육정책이 잘못됐으니 기다려봐라?”
초등학교 1학년, 배움의 길에 막 들어선 그 연둣빛 새싹한테 무얼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나.

    문 소 연  월간소프트 제주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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